'응급실 뺑뺑이'에서 중요한 건 "어디로 가느냐"보다 "먼저 했느냐"[김규빈의 저널톡]
미국 연구진, 응급의료 및 분만법 위반 사례 분석
"법·정책 불확실성 커질수록 초기 조치 지연…취약계층, 거주지 밖으로 밀려나"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응급의료에서 핵심은 환자를 어디로 보내느냐보다, 도착한 순간 필요한 조치가 즉시 이뤄졌는지 여부라는 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응급의료 법·정책 환경을 분석한 최신 연구는 제도 해석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응급환자에 대한 초기 평가와 조치가 지연될 수 있음을 수치로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등 업무보고에서 "응급조치라도 하며 다른 병원을 수배해 전원하는 게 정상 아니냐"고 언급한 발언은 특정 병원이나 사건을 지목한 비판이라기보다, 응급의료 체계의 작동 순서가 현장에서 유지되고 있는지를 묻는 문제 제기에 가깝다. 병상이나 인력 부족 이전에, 응급환자에 대한 초기 조치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응급의료에서 '조치가 먼저, 전원은 그 이후'라는 원칙은 법 제도로도 구체화 되어있다. 실제로 일부 국가는 응급환자가 도착한 병원이 최종 치료를 담당할 수 있는지와 관계없이, 초기 평가와 상태 안정화를 법적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응급의료 체계를 규율하는 대표적인 법은 응급의료 및 분만법(Emergency Medical Treatment and Labor Act, EMTALA)이다. 응급의료 및 분만법은 미국에서 응급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치료 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반드시 상태를 평가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먼저 안정화하도록 한 연방법이다.
응급의료 및 분만법은 응급환자 도착 시 △의학적 평가 △응급조치와 상태 안정화 △그 이후에 전원 여부 판단이라는 순서를 명확히 규정한다. 병원의 규모나 전문과, 환자의 보험 여부와 무관하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최소한의 응급의료 안전장치다.
18일 미국 브라운대 공중보건대학 연구진은 지난 2018년부터 2023년 1분기까지 미국 전역에서 접수된 응급의료 및 분만법 위반 신고 자료 전체를 정보공개법(FOIA)을 통해 확보한 후 응급의료 및 분만법이 일부 주의 법·정책 환경 변화 이후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분석했다.
먼저 연구진은 임신과 관련된 응급 상황을 포함한 위반 건수 변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더 강한 제제를 시행할 수록 위반 건수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임신부에 대한 예외 규정(응급실 미수용 등)이 없는 강한 제한 법제를 도입한 주에서는 위반 건수가 분기당 평균 1.18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더 강한 규제를 도입한 텍사스에서는 분기당 평균 0.69건을 더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위반 유형을 살펴보면, 의학적 진단 자체를 하지 않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는 응급조치의 내용 이전에, 환자를 응급환자로 분류하고 평가하는 초기 단계에 도입하지 않거나, 환자 자체를 피하는 경향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법·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응급의료 현장의 판단 구조가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추가 연구결과, 연구진은 메디케이드가 적은 주에서는 응급실 이용률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메디케이드는 미국의 저소득층·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 건강보험으로, 응급실 이용과 분만 등 필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는 제도다. 이에대해 연구진은 "저소득층, 취약계층은 응급 의료 체계 안에서 적절히 보호받지 못하고, (거주지 외) 병원으로 옮겨지거나, (거주지 안이더라도) 대기 상태로 밀려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법에서 규정한 응급조치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을 경우 병원에서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응급 조치' 보다는 '최종적으로 치료했을 때 예후가 좋은 환자'나 '법적 위험이 적은 환자'를 먼저 보게 되는 경향성, 그리고 그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며 "이 과정에 반복되면 응급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거치며 치료가 지연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석에 따라 달라지거나, 불확실한 의료정책은 응급의료 현장의 혼란을 야기하고, 때로는 정부에서 보장하는 응급의료 접근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응급환자에 대한 초기 평가와 안정화 단계가 위축될 경우, 그 영향은 특정 환자군을 넘어 응급의료 체계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미국의사협회 건강정책 저널(JAMA Health Forum) 12월 호에 게재됐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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