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구상' 띄운 李 대통령…관세·북핵 숙제 안고 '귀국길'

유엔 데뷔전서 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천명…北 핵보유 현실 인식 단계적 비핵화 제시
美 '현금출자' 요구에 관세협상 공전…트럼프 "3500억 달러는 선불"압박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3박5일 간의 두 번째 방미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유엔총회에서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에 방점을 찍은 한반도 구상을 발표하는 한편, 이를 기반으로 한 K-증시 세일즈에 나섰다.

다만 한미 관세협상은 별다른 진전 없이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이 대통령이 직접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만나 논의를 진행했지만 3500억 달러(약 494조 원) 규모의 대미투자펀드 조성방식을 두고 양국이 접점을 찾지 못했다.

26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취임 후 두 번째 방미 일정을 마치고 25일(현지시간) 귀국 길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유엔 데뷔전서 'E·N·D' 구상 선언…北 핵보유 인정하고 단계적 접근법 제시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에 참석해 일곱 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연설을 통해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정책 구상을 담은 'E·N·D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핵심은 남북 간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기조를 이어 받아 북한과의 공존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다"며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 가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인정하면서 단계적 비핵화 해법을 내놨다. 처음부터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두기보다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이후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거래소에서 열린 '대한민국 투자 서밋'에서도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핵무기는 이미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1년에 계속 핵탄두 15~20개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계속 생산하고, 핵폭탄 제조 능력도 키우고 있다"며 "지금 상태를 멈추는 것만 해도 상당한 안보적 이익이 있지 않냐. 일단 단기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 핵 수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중단하자, 중기적으로 핵무기를 감축해 가자, 장기적으로 비핵화를 추진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 협상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당사자,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 북한이 믿을 만한 협상 상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일하다"며 북미대화를 지원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상업적 합리성' 요구했지만 美 현금출자 '완강'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 방미 일정에서 이 대통령은 한반도 구상과 함께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복귀를 전 세계에 알리는 성과를 거뒀다. 다만 우리나라가 봉착해 있는 한미 관세협상은 숙제로 남았다.

이 대통령은 방미 기간 관세협상 돌파구를 찾기 위해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접견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3500억 달러 대미투자펀드의 현금 출자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통화스와프를 지렛대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이 대통령은 베선트 장관과의 면담 자리에서 "상업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 양국의 이익이 부합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전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한국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투자펀드 조성안을 제시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할 것이다.

베선트 장관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한국은 미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내부적으로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답했지만 우리 측의 요구를 미국 측이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베선트 장관을 만난 지 하루 만에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금에 대해 "그것은 선불"이라고 말했다. 현금출자를 통한 투자펀드 조성을 다시 한번 압박한 셈이다.

그는 "(유럽연합과 맺은 무역 협상) 한 건만 해도 (미국이) 950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라며 "일본과는 5500억 달러, 한국과는 3500억 달러를 선불로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약속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도 최근 미국이 일본과 맺은 양해각서(MOU)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관세협상은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다. 정부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최대한 미국 측을 설득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41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고려하면 단기간에 3500억 달러 직접 투자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3500억 달러의 대미투자를 증액하는 안까지 들이밀며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3500억 달러의 대미투자를 더 늘리라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hanant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