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전두환·김영삼·김대중·박근혜...이들의 공통점은?
칼맞은 정치인...정치인을 향한 습격사건
- 김동은 기자
(서울=뉴스1) 김동은 기자 = 국민의 지지를 받고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정치인들.
대한민국 정치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며 현대사를 써내려갔던 정치인들이 때론 목숨의 위협을 받는 피습이나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던 정치인들의 피습사건에 대해 정리했다.
지난 2006년 5월20일 오후 7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오세훈의 지원 유세를 위해 신촌 유세장을 찾았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청중들과 악수를 나누며 유세차에 오르려던 순간 청중 속에 숨어 있던 의문의 남자가 10cm 가량의 커터칼로 박근혜의 오른쪽 뺨을 그었다.
이 사건의 범인 50세 지충호는 현장에서 체포된 후 서대문 경찰서에서 “박근혜를 노렸다기 보다 주목을 받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오른쪽 뺨에 길이 11cm의 큰 상처를 입은 박근혜는 장시간의 봉합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마치에서 깨어난 박근혜의 첫 마디는 “대전은 요?”였다고 한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전국을 돌며 제4회 동시지방선거 지원유세를 하고 있었다.
병상에서 눈을 뜨자마자 한나라당이 열세였던 대전을 걱정했던 박근혜의 모습은 그곳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가 우세했던 대전 시장 선거는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박근혜가 병상에 누웠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병문안을 했다. 김영삼은 “나도 질산테러 등 여러차례 피습을 받았다”며, “주로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1969년 6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는 국회에서 ‘3선 개헌’의 부당성을 알리는 대정부 질문을 한다.
일주일 후인 6월 22일 밤 10시경 상도동으로 귀가하던 김영삼은 두 남자로부터 질산테러를 당한다.
당시 김영삼은 차량에 타고 있었는데, 김영삼이 타고 있던 차량 일부와 자택 주변의 아스팔트 등은 질산에 녹아내렸다.
한국정치사에서 정치인 피습 사건중 김대중 납치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1973년 8월 8일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김대중은 5명의 괴한에게 납치를 당한다.
도쿄에서 괴한에게 납치된 김대중은 129시간만에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풀려나게 된다.
이 사건은 사건 발생 후 25년만에 당시 안기부의 공식문건을 통해 전모가 밝혀졌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의 조직적 범행이었고, 중앙정보부 선박 용금호에 감금되었던 김대중은 미국의 구명으로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1983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겨냥한 미얀마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도 있다.
이 사건은 북한이 기획한 폭탄테러로 당시 동남아 국가를 순방하던 대통령의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일정이 밀려 아웅산묘소 참배시간에 늦게 도착한 전두한 전 대통령은 현장에 도착하기 전 미리 울려퍼진 진혼곡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정치인을 향한 피습사건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올 4.15 국회의원 선거 광진을에 출마한 오세훈 후보는 유세중 칼을 든 괴한에게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알아본 정치인을 향한 습격은 정적이나 국가조직에 의해 계획된 테러도 있었고, 때로는 무명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저지른 습격사건으로 기록되어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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