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총리 별세…민주 진보 정부 반석 올린 '정치 거목'

7선 의원·총리 지낸 '친노·친문' 좌장…진보진영 고비마다 정권 창출 이끌어
정계 은퇴 뒤 李 대통령 지원…지난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임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중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말하고 있다. 2025.11.3/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금준혁 기자 =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고인은 민주 진보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이다. 학생운동과 재야 민주화운동으로 시작된 그의 정치 역정은 현실 정당 정치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정당 정치 입문 이후 그의 능력이 화려하게 꽃피는 시기로 평가된다.

역사적인 첫 정권교체로 1997년 국민의정부 탄생에 기여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겪는 정치사의 격변 속에서도 탁월한 현실 감각으로 문재인·이재명 정부의 출범에 기여했다. 그는 '킹메이커'였다.

고인을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그를 딱딱하고 무뚝뚝한 성격이면서도 따뜻한 인간미가 있으며, 때론 급진적이고 개혁적이면서도 냉철하고 실용적인 면모를 갖췄다고 기억한다.

10월 유신 때 학생운동 투신…평화민주당 입당, 정치 입문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대학 1학년이던 1972년 10월 유신 선포에 반대하며 학생운동에 투신한 1세대 운동권 출신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돼 1년을 복역하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다시 2년 6개월을 복역한다.

전두환 등 신군부가 집권한 80년대 그는 재야에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에 매진한다. 1987년 6월항쟁 당시엔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으로 역할 했다.

고인이 정당 정치에 뛰어든 계기는 민주화운동으로 쟁취한 직선제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한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면서다. 민주세력 분열로 1987년 대선에서 신군부 세력인 노태우 후보에게 권력을 내주면서 민주세력은 집권에 실패했다.

그러나 1988년 민주화 이후 첫 총선에서 집권세력인 민주자유당이 과반을 달성하지 못해 사상 첫 여소야대 정국이 열렸다. 고인은 당시 서울 관악구에 출마해 13대 국회에 진출한다. 13대 국회에서 열린 5·18 광주민화운동진상규명 청문회에서 노무현 의원과 함께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13대 총선 이후 17대까지 서울 관악을에서 5번 연속 당선됐으며 19대와 20대 총선에선 세종시에서 당선돼 7선 고지에 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해 5월 31일 세종시 나성동 나무그늘광장에서 이해찬 고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5.5.3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주요 선거서 민주진영 승리 이끌어…교육부 장관·국무총리 역임

고인은 본인의 선거뿐 아니라 민주 진영의 주요 선거에서 노련한 감각과 냉철한 분석력으로 여러 차례 승리를 이끌었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한 뒤 만든 새정치국회회의에 참여했다. 그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조순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내세워 당선시킨다. 전체 선거에서도 여당을 압도하는 당선자를 냈다.

1997년 대선에 참여해 역사적인 첫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김대중 정부 탄생의 핵심 공신의 위치에 오른 그는 이후 정부와 정당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진보진영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에서는 제38대 교육부 장관, 2004년 참여정부에서는 제36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교육부 장관 재임 당시 고교평준화, 연합고사 폐지, 보충수업 폐지 등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을 바꾸기 위한 개혁안을 추진했다. 이런 파격적인 정책 추진에 반발하는 여론도 높아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저하시켰다는 비판을 담은, 이른바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2001년 대통령선거에서도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반에서 활동하며 정권 재창출에 기여했다.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에 임명된 그는 의전총리·대독총리로 불리던 당시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실세 총리로서 '책임총리제'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국무회의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최대 현안인 공공기관 지방이전안을 추진했다.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에 반대 의견을 내는 등 실질적인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을 행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신설 지역구이자 총선 전략지역인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된다. 그해 민주통합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당선돼 정권 재창출에 매진한다. 18대 대선에서 야권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지도부 총사퇴를 결의하고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를 이끌었으나 대선에서 패배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김종인 지도부에 의해 컷오프됐으나 무소속으로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민주당에 다시 복귀한다.

'20년 집권론'으로 선거 이끌어…4명의 대통령 탄생에 기여

고인은 민주진영 20년 집권론을 설파하며 주요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정조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셨는데 그 이후 222년 동안 민주적, 개혁적인 정권이 집권한 것은 DJ(김대중 전 대통령) 5년, 노무현 5년, 문재인 5년 등 15년밖에 없다"며 "편향성에 대한 복원을 시도하려면 20년은 꾸준히 집권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조기 대선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문재인 정부를 탄생에 기여했다. 그는 대선 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당선돼 21대 총선을 이끌어 대승을 거둔다. 총 180석(더불어시민당 17석 포함)을 얻어 역대 민주정부의 총선 결과 중 가장 큰 승리를 이끌어 낸다.

고인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하에 치러진 지난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175석으로 압승하는 데 기여했다. 총선 승리의 역사를 다시 쓰며 이재명 정부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해 10월 그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지난 22일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서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하며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1952년 충남 청양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민청련 상임위 부위원장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민주통합당 대표 △제13·14·15·16·17·19·20대 국회의원(7선) △더불어민주당 대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해 9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창당 70주년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5.9.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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