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적과 동지
- 조소영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마음이 어지러울 때 드라마 대본집을 자주 읽는다. 반복해서 읽은 대본집 중 하나는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1부에서는 여자주인공 주준영(송혜교 역)이 동료 PD들과 갈등·이해를 겪고 읊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그중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다. "지금 내 옆의 동지가 한순간에 적이 되는 때가 있다."
최근 이 대목이 떠오른 이유는 분명하다. 이제는 무소속이 된 강선우 의원과 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적이 된 동지'와 마주보고 있는 인물들이다.
강 의원과 김 전 원내대표가 얽힌 사건은 '1억 공천 헌금 수수 및 묵인' 의혹으로 불린다. 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2022년 6·1 지방선거를 앞둔 4월, 민주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이던 강 의원 측은 김경 서울시의원 후보로부터 1억 원을 받았다. 강 의원은 이 문제를 공관위 간사였던 김 전 원내대표와 만나 상의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강 의원에게 김 후보에 대한 컷오프(공천 탈락)는 철회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받은 돈은 속히 돌려주라고 했다. 그러나 김 후보는 어찌된 일인지, 공관위에서 강서구 시의원 후보로 단수 공천을 받았다.
김 전 원내대표는 이와 별개로 본인과 가족을 둘러싼 각종 특혜 의혹이 그간 전방위적으로 제기돼 왔던 터다. 근래에는 부인의 동작구의회 업무추진비 유용 건, 전직 동작구 구의원들이 작성한 탄원서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2024년 4·10 총선을 앞두고 당에 제출됐다는 탄원서에는 이들이 '김 전 원내대표 측에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헌금을 건넸다'고 적혔다.
이 후보자는 폭언·갑질 논란에 휩싸여 있다. 과거 의원실 보좌진을 향해 '죽여버리고 싶다', '아이큐가 한 자리냐' 등의 발언을 한 녹취가 공개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통합·실용 기조에 따른 파격 인사라는 의미는 색이 바랜지 오래다.
공천 헌금 의혹은 김 전 원내대표를 향해 이른바 '1일 1의혹'이 제기되던 중 나왔다. 김 전 원내대표에 따르면 연이은 폭로의 출처는 '본인과 함께 일했던 보좌진'이다. 강 의원의 경우, 이재명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보좌진에 대한 갑질 논란'이 불거지며 자진 사퇴한 이력이 있다.
이 후보자는 보좌진을 넘어섰다. 그의 '정치적 고향'인 국민의힘은 라이벌 당의 장관 후보자가 된 이 후보자에게 강한 배신감을 드러내며 그를 전격 제명했다. 이제는 그의 낙마를 바라고 있다.
한동안 소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당장 민주당은 수습을 위해 제명(강 의원), 윤리심판원에 징계심판 요청(김 전 원내대표), 공천 시스템 보완 방안 등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6·3 지방선거를 단 5개월여 앞두고 다른 당들이 이런 '호재'에 주저할 리 없다. 국민의힘은 특검, 조국혁신당은 공천 전수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주준영의 내레이션은 마지막 부분도 꼭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는 누구의 적이었던 적은 없는지." 마음이 아프지만 지금의 이 사달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정직한 질문이다. 우리는 누구의 동지였고, 또 누구의 적이었는지, 정치 역시 그 질문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cho11757@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