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소심한 기자가 소란스러운 국회를 견디는 이유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저물어가는 12월의 밤 국회의사당이 불을 밝히고 있다. 2025.12.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저물어가는 12월의 밤 국회의사당이 불을 밝히고 있다. 2025.12.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김세정 기자 = 정해진 계획에 따라 일상이 질서 있게 흘러갈 때 안도감을 느끼는 제게는, 예측하기 어려운 국회가 매일 하나의 도전처럼 다가옵니다. 국회를 출입하다 보면 하루의 리듬이 좀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자주 실감합니다. 회의는 미뤄지고, 돌발 일정은 반복됩니다. 공들여 생각해 둔 플래너는 여야 간 합의 불발과 예기치 못한 변수 앞에서 쉽게 무너집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마음을 다잡습니다. 오늘도 내 계획대로 되는 건 없겠지만, 이 혼란의 한복판에서 하루를 무사히 버텨보자고요.

무엇보다 버거운 건 날 선 취재 현장을 견디는 일입니다. 민감한 현안으로 전화를 걸 때면 잠시 손끝을 망설이게 되는 순간이 적지 않습니다. 돌아올 반응이 늘 반갑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거절과 냉담한 기류에 소심한 마음에는 생채기가 조금씩 남습니다. 퇴근길에 느끼는 탈진감은 단순히 몸이 고된 탓만은 아닐 겁니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의 풍경은 제게 유독 큰 소모감을 안깁니다. 의원들의 고성이 오가고, 끝없는 공방 속에서 논쟁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합니다. 이런 장면을 바라보다 보면 깊은 산속 사찰의 고요한 툇마루에 앉은 저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런 완벽한 정적이 주는 위로가 그리울 만큼 이곳의 데시벨은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저를 현실로 끄집어당기는 건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정치 현실입니다. 집권여당이 된 민주당은 여전히 투쟁의 언어에 머무는 모습입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위치에 섰다면 조율이 앞서야 할 텐데 여전히 상대를 향한 공세에만 익숙합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분명히 정리하지 못한 채 정쟁에 기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맨날 싸우기만 한다"는 한숨 섞인 목소리를 현장에서 뼈저리게 느낍니다. 때로는 저도 묻습니다. 이렇게까지 시끄러워야 하냐고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0회국회(임시회) 3차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산회가 선포된 후 인사하고 있다. 2025.12.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그런데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문득 생각합니다. 만약 이 소음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하고요. 1년 전 그날 밤,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어땠을까요. 법사위 회의장에서 울려 퍼지는 고성, 본회의장을 오가며 벌이는 설전, 난감한 질문을 피해 빠져나가는 의원들. 이 모든 시끄러운 풍경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대신 정적이 찾아왔을 겁니다. 누구의 목소리도 허락되지 않는 그런 서늘한 고요함 말입니다. 제가 상상하는 사찰의 평화로운 정적과는 다른 공포스러운 침묵이었겠지요.

이 소란스러움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반대할 수 있는 자유, 비판할 수 있는 권리,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 계엄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잃었을 겁니다. 민주당의 거친 구호도, 국민의힘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도 허락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게 더 무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2025년이 저물어갑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요. 어느 때보다도 격동의 한 해를 견딘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새해에도 국회는 여전히 시끄러울 겁니다. 여야는 또 충돌할 것이고, 법안 처리는 지연될 것이며, 정치 뉴스는 답답함을 안겨줄 겁니다. 그때 "정치는 원래 그래" 하며 고개를 돌린다면 1년 전 그날 밤 누군가가 원했던 침묵에 우리 스스로 가까워지는 건 아닐까요. 조용한 독재보다 시끄러운 민주주의가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걸 이미 그날 밤의 기억을 통해 배웠습니다.

2026년에도 저는 국회로 가는 버스에 오릅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돌발 상황에 한숨 쉬고, 반복되는 거절에 또다시 마음을 다치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시끄러울 그곳의 목소리를 충실히 전달하겠습니다. 그 소란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정치가 시끄럽다고, 지겹다고 부디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부족한 이 글을 통해 소심한 기자의 진심이 닿았으면 합니다. 국회는 여전히 시끄럽겠지만, 여러분의 일상은 평안하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liminallin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