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청래식 '언어'의 유효기간
- 임세원 기자

(서울=뉴스1) 임세원 기자 = 화두는 내란 청산이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당시 개혁을 약속하며 내세운 명분은 "내란 청산이 시대정신"이라는 것이었다. "사람하고만 악수하겠다"며 야당과의 관례적인 악수도 거부한 그는 강렬한 전투의 언어로 개혁을 밀어붙였다. 12·3 비상계엄의 여진이 남아있었던 그때 진보성향 중도층도 공감할만한 유효한 전략이었다.
강경 일변도의 정청래식 리더십은 위기 국면에서 강했다. ‘차돌’처럼 단단하고, ‘전광석화’처럼 빠른 결단은 지지층을 결속시키고 '개혁 입법'을 속속 처리했다. 협치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따라붙었지만 국민의힘이 극우적 행보로 스스로 정치적으로 고립되던 시기였고, 이에 반해 민주당은 검찰개혁 등 숙원 과제를 줄줄이 통과시켰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좋은 전략이었다.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 정 대표의 화두는 여전히 내란 청산이다. 그는 교섭 단체 연설, 최고위원회 회의, 국정감사, 지역위원장 워크숍은 물론, 본인이 100일 기자회견을 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때조차 내란 청산을 언급하고 있다.
위기의식이 개혁의 동력이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내란 특검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무엇보다 여당이 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구호가 계속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유효했던 전투 모드는 평시의 국정 운영에서는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대결 정치의 부작용은 이어져 왔다. 원내대표와의 ‘투톱 갈등’에 이어 ‘명·청 갈등’까지, 속도전의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APEC 정상회의 이후 재판 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추진 과정은 대통령실과 엇박자가 났다는 시선을 받고 있다.
내란 청산 리더십은 과거를 정리하는 데는 유효했지만 미래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정 운영은 돌진이 아니라 조율의 영역이다. 정국의 변화를 담지 못하는 논리와 언어는 더 이상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어쨌거나 그때는 내란세력과 전쟁이었지만 이제 민주주의와 민생의 재건을 이야기할 때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을 너머 더 큰 정치 무대를 바라본다면 이제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전시의 언어'로 정치를 풀어가던 리더가 밋밋한 '평시의 언어'로 당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정청래식 리더십의 유효기간은 여기서 결정될 것이다.
say1@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