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호남선 귀성인사도 '지역주의'…이번엔 국힘이 깼다

민주 용산역, 국힘 서울역 '오랜 관행'…국힘, 올해 동대문서 봉사활동
"한국 정당정치 지역주의 기본…깨지 않으면 적대정치 못 끝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2일 서울 용산역에서 추석 귀성객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10.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김세정 기자 = 명절마다 여야 지도부는 '서울역은 영남, 용산역은 호남'이라는 낡은 구도를 반복한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의 관문인 용산역, 국민의힘은 경부선 출발지 서울역에 집결한다. '전국 정당'을 외치면서도 결국 전통 지지 기반에 기대는 행보는 되풀이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2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곧장 용산역으로 향했다. 호남행 열차가 출발하는 이곳은 명절마다 민주당이 지지층을 결집하는 무대가 돼왔다. 조국혁신당과 기본소득당도 같은 장소에서 귀성 인사를 하며 범여권 정당들이 앞다퉈 호남 민심 잡기에 나섰다.

지난 1월 당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설 귀성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1.24/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文정부 때는 서울역…李지도부 땐 '고터' 찾기도

민주당도 때론 다른 거점을 택한 적이 있다. 2018년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설과 추석 연휴 모두 용산역 대신 서울역을 찾아 귀성 인사를 진행했다.

지난 설에는 당시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지도부는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을 방문했다. 대선을 앞두고 호남 상징성에 머물지 않고 전국적 교통 요충지를 선택해 전국정당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포석이었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용산역에서 "지난 설명절은 12·3 내란 때문에 불안하고, 우울하게 보내셨을 텐데 올 추석은 내란을 극복하고 내란의 먹구름이 점점 걷히고 있다"며 "국민들도 밝게 웃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용산역 회귀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호남 민심을 다잡으려는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정 대표는 호남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호남 지역 발전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혁신당이 호남에서 전면전을 예고한 상황에서 호남 단체장 자리를 내줄 경우 수도권 선거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지도부가 13일 오전 서울역에서 추석 귀성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9.13/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역 택해온 국힘…올 추석은 봉사활동으로 변화 줘

반면 국민의힘은 전통적으로 경부선 출발지인 서울역을 무대로 삼아왔다. 지지 기반인 영남권과 수도권 중도보수층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국민의힘은 과거부터 이곳에서 영남행 귀성객을 맞으며 '경부선 라인' 결속을 다져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은 호남, 국민의힘은 영남권에 대한 메시지를 명절마다 던지는 것"이라며 "특히 민주당은 혁신당이 호남에서 전면전을 예고한 만큼 단체장 자리를 내준다면 수도권에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동대문구 동백꽃 노인복지관을 찾아 송편을 만들던 중 복지관 관계자가 만들어준 송편을 먹고 있다. 2025.10.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그러나 국민의힘이 올 추석에 이 관행을 깼다. 장동혁 지도부는 서울역 대신 서울 동대문구 노인복지관에서 송편 빚기 봉사활동으로 하루를 열었다. 이어 노인의날 기념식 참석과 전통시장 방문 등 민생 일정을 소화했다.

여당과의 정치적 공방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낮은 자세로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부각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지역주의 이미지 재생산 비판도

실제로는 영남·호남행 열차 모두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출발할 수 있고, 수서역 SRT까지 더해지며 귀성길 관문은 이미 다원화됐다.

교통 현실은 변했지만, 정치권이 여전히 상징적 연출에 몰두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풍경이 오히려 지역주의 이미지를 재생산한다는 지적이 더해지기도 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국의 정당정치는 지역주의가 기본이다. 양당이 나뉘어 귀성 인사를 도는 건 민주화 이후에 그렇게 됐다"며 "이를 깨지 않는다면 혐오와 적대의 정치를 끝낼 수 없다"고 말했다.

liminallin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