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연마기에 손가락 들어가…지금도 손톱에 고무가루"
"왼손 깁스한 채로 출근…엄마가 새벽4시 데리러와"
"최고의 사랑…차가운 삶 견디게 하는 건 그런 온기"
- 박주평 기자
(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8일 고무공장에서 일하던 소년공 시절 연마기에 손가락이 말려들어 갔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지금도 왼쪽 중지 손톱에 검은 고무 가루가 남아있다는 사연을 소개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제목의 웹 자서전 7편을 공개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5일부터 웹 자서전 시리즈를 공개하고 있다.
이 후보는 7번째 웹 자서전에서 창곡동 목걸이 공장 사장이 직원들 월급을 떼먹고 야반도주를 해, '동마고무'라는 콘덴서용 고무부품 공장에 취업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모터로 회전하는 샌드페이퍼(사포) 연마기에 사출기로 찍어낸 고무기판을 갈아내는 일이었다"며 "소위 '빼빠'치는 것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손바닥이 닳고 지문이 사라지더니 피가 흘러나왔다"고 했다.
이어 "야근은 밤 10시, 철야는 새벽 2시. 철야 하는 날이면 통금시간 때문에 새벽 4시까지 공장바닥에서 자다가 귀가했다"며 "통금해제까지 잠이 안 오면 노래를 배우거나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웠고, 그때 강원도 출신 꼬마노동자(그는 놀랍게도 나보다도 나이가 어렸는데 지금은 이름을 잊어버렸다)에게 배운 최초의 최신 유행가가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하루는 연마기에 손가락이 말려들어 갔다. 부실한 치료 덕에 내 왼쪽 중지 손톱에는 지금도 검은 고무 가루가 남아 있다"며 "산업재해로 치료받는 기간에는 월급의 70%를 준다는 법 같은 건 알지도 못했고 회사에서도 그럴 마음은 전혀 없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월급을 받기 위해 왼손에 깁스를 한 채로 공장에 나가서 남은 한 손으로 일했고, 한 손으로 일하는데도 월급을 다 준다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했고, 대신 어머니는 이 후보와 출퇴근길을 동행했다고 한다. 이 후보는 "밤늦은 시간까지 공중화장실에서 일하다가 공장으로 데리러 왔고, 철야 하는 날이면 새벽 4시에 데리러 왔다"며 "그건 가진 것도 힘도 없는 엄마가 어린 아들에게 준 최고의 사랑이었다"고 했다.
이어 "세상이 모두 잠든 새벽에 엄마와 둘이 상대원동 비탈길을 오르면 숨도 차고 힘들었지만, 잡은 엄마 손을 발걸음에 맞춰 신명 나게 흔들며 나는 행복했다"며 "엄마와 함께라면 길고 긴 하루의 고된 노동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고 엄마 손은 언제나 따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섣달그믐날처럼 차가운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그런 온기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라고 했다.
jup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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