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유럽 근로시간 단축 핵심은 '탄력성'…지원책도 병행

독일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도입…노르웨이 노동법 손질
현장 정착까지는 장시간…프랑스 적극적인 기업 지원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세종=뉴스1) 박정환 기자 = 여야가 합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주 52시간 근로' 시대가 열렸다. 단축된 근로시간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서도 비슷한 수준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2015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2348시간)에 이어 연간 근로시간이 2위(2071시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비춰볼 때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여러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근로시간 단축 정착의 핵심은 '탄력성'

근로시간 단축이 정착된 유럽 선진국들의 특징은 '탄력성'이다. 노사의 상황별로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하는 등 유연성을 보장한 것이다.

유럽연합(EU)은 1993년 연장근로를 포함해 일주일(7일) '평균'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노동법 입법 지침을 만들었다. 48시간 내에서는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한 기간은 4개월 내로 명시했다.

2003년에는 지침을 개정해 주 평균 48시간을 유지하되 노동자가 원하면 초과해서 근무할 수도 있다는 예외규정을 뒀다. 또 탄력적 근로가능 기간은 4개월에서 12개월로 늘렸다.

아예 색다른 근무제를 도입한 국가도 있다. 독일은 노동자가 초과 근무를 하면 이를 저축해 쉴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를 도입했다. 예를 들어 하루 10시간을 일하면 2시간을 계좌에 넣고, 추후에 근로시간 단축이나 휴가에 쓰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근로시간을 조정해 각종 위기를 돌파한 바 있다. BMW는 노동자 개인별로 근로시간 저축 계좌를 만들어 단기적인 경기상황와 생산량 변동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폭스바겐은 1993년 경영난이 닥치자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주당 28.8시간까지 줄여 일단 해고를 막고 생산력을 유지했다. 자녀가 어린 노동자는 근로시간을 줄였다가 자녀가 크면 다시 늘리는 등의 근무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연간 노동시간이 1420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무려 345시간 짧은 노르웨이는 주 법정근로시간이 37.5시간이다. 근로시간에는 점심·휴식시간도 포함한다.

노르웨이는 2000년대 초반 노사가 머리를 맞대 자율적으로 근무형태를 조정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손질했다. 이에 주 37.5시간을 넘지 않은 범위에서 노동자는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야가 합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법정 근로시간 40시간(평일 하루 8시간), 연장 근로시간(토·일요일 근무 포함) 12시간으로 주당 총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게 됐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우리나라 현행 근로기준법에도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바뀐 부분은 없다.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탄력적 근로제도 좀더 현장의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의 근로시간 단축의 기본 베이스는 기업별 상황을 고려한 탄력성"이라며 "산업·업무·계절별 등으로 근로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성을 우리 법이 어떻게 수용해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석 194인 중 찬성 151인, 반대 11인, 기권 32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2018.2.28/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현장 정착까지는 장시간…선진국 각종 '보완책'

근로시간 단축이 산업현장에 정착하기까지는 긴 기간이 필요하다는게 중론이다. 주요 선진국들도 오랜 시간 근로시간 단축 정착을 위해 노력했으며, 정부는 각종 보완책을 펴나갔다.

프랑스는 1982년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이에 적극적인 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후 주 35시간제를 시행하면서 최저임금 노동자에 대해선 근로시간이 단축되더라도 현행 월급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조했다.

독일 역시 노사가 단협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이뤄내면 감소된 임금을 보전해 주는 정책을 폈다.

네덜란드는 노사정의 긴 합의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보완책을 마련한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적 대타협의 모델로 꼽히는 1980년대 바세나르 협약 등을 통해 주 38시간의 근로시간을 주 36시간으로 단축했다.

협약을 통해 노동자는 임금인상 요구를 억제하는 대신 기업은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렸다. 이를 보조하기 위해 정부는 1996년 '평등 대우법'을 도입해 시간제 근로자가 종일제 근로자와 동일한 노동을 하는 경우 급여 체계와 연차, 각종 복지 혜택을 동등하게 받도록 법제화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1990년대 5% 이상 증가했으며 경제 성장률은 3.1%로 유럽연합(EU) 평균인 2.1%을 넘어섰다.

일단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후속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실태조사·개선방안 등 개정된 근로기준법의 현장안착을 위한 다양한 후속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산업현장의 영향을 조사·분석하고 노사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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