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자자한 北 종이…'낙엽'까지 펄프로 만들어 '지방 자급'

가랑잎 원료 펄프 생산 기술 개발…종이 생산 10배 증가 선전
현실은 '누런 종이' 사용하는 북한…신기술로 포장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일 "국가과학원 종이공학연구소에서 리영일 소장이 도 종이공장 건설과 종이생산기술 연구 사업을 지도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 북한 당국이 '낙엽'에서 펄프를 뽑아내는 새로운 종이 생산기술을 개발했다고 선전했다. 조악한 종이 품질로 악명 높은 북한은 최근 지방 곳곳에 종이 공장을 세우고 제지 신기술 개발에 나서며 생산량 확대와 품질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북한이 원료난 타개책으로 내세운 낙엽·갈대 등 '비목재' 펄프만으로는 종이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14일 나온다. 열악한 전력 사정과 황폐화된 산림도 걸림돌로 꼽힌다.

북한 대외선전잡지 '금수강산' 9월호는 '새로운 종이생산기술을 확립한 연구집단'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북한 '국가과학원 종이공학연구소'의 개발 성과를 공유했다. 북한의 종이 공업은 내각 산하 경공업성 종이총국에서 관리하고, 신기술 개발은 이 연구소가 전담하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연구원들은 10년 전부터 새로운 제지 기술 연구에 돌입했다. 연구진은 "원료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고서는 현실적인 의의가 없다"는 판단 아래 원료문제 해결에 나섰다.

연구진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단풍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밤나무의 '가랑잎'으로 펄프를 생산하는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이후 가랑잎으로도 질 높은 펄프를 생산할 수 있는 국내산 열화학기계 펄프생산기술을 개발했다.

해당 기술은 폐지펄프나 폐섬유 펄프에 가랑잎 펄프를 일부 혼합해 종이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매체는 "종이 톤(t)당 펄프량을 훨씬 절약할 수 있어 생산자들의 호평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생산공정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연구진은 하나의 생산공정에서 필기용·포장용·인쇄용 등 여러 종류의 종이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다용도 초지기'(제지 기계)를 개발했다. 매체는 이를 통해 생산량이 종전보다 10배 이상 뛰어오르는 성과를 거뒀다고 선전했다.

원료·전력난에 공장 가동도 저조…품질 개선 '한계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전날 평안남도 은산군에 건설된 종이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산 종이는 경공업 제품의 질이 좋지 않은 북한에서조차 외면받는 품목이다. 발간물의 경우 목재가 아닌 폐지 등 비목재 펄프를 활용해 종이가 얇고 표면이 고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학교와 기업은 여전히 '누런 종이'(갱지)를 사용하고 있다.

배경에는 원료 부족과 만성적인 전력난이 있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산림이 크게 황폐해진 상태다. 쓸 만한 목재는 종이 생산이 아닌 '땔감'으로 먼저 활용된다. 종이 공장 가동률은 25%를 밑도는 수준이다.

북한은 2024년 시작한 '지방발전 20x10 정책'의 일환으로 각 도가 도내 종이 수요를 자체 충족할 수 있도록 종이 공장을 새롭게 건설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해 12월 평안남도 은산종이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다른 도에서도 종이공장을 자체로 건설할 수 있는 본보기적인 경험이 마련됐다"며 추가 공장 신설 계획을 시사하기도 했다.

북한 내부에서도 저조한 종이 생산량과 낮은 품질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당국 역시 여러 관영 매체를 통해 종이 질 개선을 위한 기술 개발에 나선 사실을 연이어 선전하고 있다.

북한이 지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비목재' 펄프 기술을 생산력 확대의 주요 수단으로 홍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북한은 신의주화학섬유공장에서 100% '갈대'를 활용한 종이 생산 공정을 구축했다고 밝힌 바 있다. 펄프 생산에 폐지와 폐섬유를 활용하는 방식도 '친환경적'이라고 소개해 왔다.

다만 비목재 원료 사용 비중이 높은 종이는 품질 면에서 목재 펄프 종이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낙엽·갈대 펄프를 신기술로 포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목재를 구하지 못해 질 낮은 원료를 쓸 수밖에 없는 사정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북한의 인쇄용지 생산능력은 6만 2000톤으로 남한의 2.4% 수준에 불과하다. 부족한 물량은 상당 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원료 수급과 전력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북한 당국의 의지와 별개로, 종이의 품질을 개선하고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gerra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