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주장 스피커 급 높인 北…트럼프 제안 후 '민감' 반응

'비핵화' 논의 IAEA 총회 비판에 직접 나선 최고 실세 김여정
'핵보유국' 입지 고착화에 주력…협상 대비 몸값 높이기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 북한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핵보유국 입지 고착화를 위해 총력을 다해 선전에 나서고 있다. 향후 미국 등과의 협상이 열릴 때를 대비해 '몸값'을 높여 협상의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18일 제기된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동생으로 북한의 대외 사안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전날(17일) 담화를 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최근 총회에서 북한에게 비핵화에 나설 것을 요구한 것이 "귀에 익은 잡소리"라고 맹비난했다.

김 부장이 매년 열리는 IAEA 총회 결과를 직격하는 담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IAEA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비핵화 관련 논의를 진행하는 것에 불쾌감을 표하기 위한 의도라고 보고 있다. 북한이 앞으로 어떤 방식의 협상이 열리더라도, '비핵화'라는 의제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 두지 않겠다는 강한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IAEA 비핵화 촉구에 '최고 실세' 김여정 등판…'강한 입장 표명' 필요했다

김여정 부장은 담화문을 통해 IAEA 총회에서 거론된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비판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 논의에 대해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의 핵보유국 지위는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이어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써도 우리 국가의 힘과 지위에서 일어난 중대 변화를 절대로 역전시킬 수 없으며 앞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핵보유 및 고도화를 이어갈 것을 암시했다.

IAEA 회원국들은 매년 9월 정기총회에서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을 규탄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구해 왔다. 지난 14일 개막한 올해 IAEA 총회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회원국들은 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비핵화 의무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IAEA 총회의 비핵화 논의는 매년 이뤄져 온 만큼, 이에 대한 북한 당국의 반응 또한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피커'의 급이 한층 올라갔다. 과거엔 익명의 외무성 대변인 또는 원자력기구 대변인 담화로 대응했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최고 실세'인 김여정 부장이 직접 나서 경고 메시지를 냈다. 지난해만 해도 북한은 오스트리아 빈 주재 북한 상설대표부라는 낮은 급의 명의로 '공보문'을 냈다는 점에서, 올해는 담화 주체는 물론 형식의 급도 급격하게 올라간 셈이다.

북한의 강경한 입장도 더욱 강조됐다. 지난해에는 "IAEA가 핵무기전파방지조약(NPT) 밖에 존재하는 핵보유국에 간섭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 것과 달리, 올해는 아예 "IAEA와 서방 국가들이 어떤 조치를 해도 의지와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완강한 논리를 펼쳤다.

북한은 지난 10일 개최된 한미 대량살상무기대응위원회(CWMDC)에 대해서도 국방성 대변인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비난을 쏟아냈다. 국장급 실무 협의체인 CWMDC에 대한 북한 당국의 비난 담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국방성 대변인은 한미의 대량살상무기 대응이 자국의 '핵무기 사용 조건'에 해당할 수 있다며 위협 수위를 높였다. 대변인은 "우리 국가를 겨냥한 적들의 이 같은 대량살육무기 공격과 사용 위협은 국가 핵무력 정책 법령의 해당 조항의 발동을 요구하는 중대 안보 도전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해당 조항의 발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해석하고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일 것을 권고한다"라고 밝혔다.

북한의 핵무력정책법(조선민주주의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해) 6조에서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5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 중 북한이 언급한 조항은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육무기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방성 대변인의 언급은 실제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한 입장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핵무기 보유의 법적 근거를 지닌 체제라는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미 대화 염두에 두고 협상력 강화 포석…'핵 건드리지 말라' 메시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임기 때인 2018년 6월 12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합의문을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이 같은 이례적인 움직임은 비록 기약은 없지만 언제라도 열릴 수 있는 북미 협상 때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적대적 정책 철폐'를 끌어내기 위한 북한의 포석으로 읽힌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연이어 유화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며 김정은 총비서와의 대화 재개 의사를 표명하는 상황에서 북한도 '만일을 위한 대비'를 하는 차원이라는 해석이다.

김 총비서의 의중을 직접 확인하고 공표할 수 있는 김 부장이 갑자기 IAEA 총회를 계기로 담화를 낸 것도 사실은 '대미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직접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을 거론하면 '북미 대화 가능성'이 제기될 것을 우려해 미국에 대한 직접 언급을 피하면서도 강경한 입장을 냈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2022년 핵무력정책법을 채택하고, 이후 헌법에 핵무력 강화 정책과 핵무력 지휘권 규정들을 포함하는 등 '핵보유국'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리고 김 총비서는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비핵화 요구를 포기하고 현실을 인정한다면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며 협상의 문턱을 크게 높인 상황이다. 북한은 김 부장의 담화로 '협상의 출발선'을 물릴 의사가 전혀 없음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북미 대화를 앞두고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핵보유국 지위 인정이 선결 조건임을 압박한 것"이라며 "미국이 비핵화를 주장하는 순간, 북미 대화는 없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gerra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