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지는 北 최고인민회의…북미 대화 고심이냐, 자신감 속 무관심이냐

통상 9월에 개최해 온 회의 일정 발표, 올해는 없어
트럼프 '대화' 손짓에 대외사업 전략 논의 시간 필요할 가능성도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지난해 9월 20~21일에 열린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3차 회의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북한이 최근 수년간 9월에 개최해 온 최고인민회의 회의의 소집 일정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통상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외사업을 포함한 각 분야별 정책 추진 기조를 밝혀왔다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화 제스처'에 대한 북한의 고심이 깊어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북한이 올해 러시아에 이어 중국과의 관계까지 복원하면서 외교적 운신의 폭을 넓힌 만큼, 당장 중요한 정책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최고인민회의 소집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라는 해석도 14일 제기된다.

김정은,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주목…작년엔 '핵보유국 인정' 대미 메시지

북한은 헌법상 최고주권기관이자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주요 법률과 예산, 국가기구 인사를 확정하고 노동당이 제시한 정책 방향을 국가 정책으로 제도화하는 등 국정 운영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김 총비서는 중요한 계기마다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대남·대미 정책과 핵무력 정책 등 국정 기조를 직접 밝혀왔다.

북한은 2022년 8월 8일 노동신문을 통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를 같은 해 9월 7일 소집한다고 공고한 바 있다. 9월 7일부터 이틀간 열린 회의에서 북한은 핵무력의 사명과 사용 조건, 지휘체계를 규정한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라는 이름의 법령을 채택했다. 북한이 핵보유를 공식화하면서 이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을 명시한 법을 제정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2023년에도 북한은 9월 26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회의 약 한 달 전인 8월 31일에 회의 일정을 공고했다. 9월 26일부터 이틀간 열린 회의에서 북한은 핵무력 강화 정책을 헌법에 명시했다고 밝히면서 '핵보유'를 최고법인 헌법에까지 반영하는 등 핵보유국 공인을 위한 조치를 강화했다.

2024년에는 9월 16일에야 최고인민회의 회의 일정(10월 7일)을 공개했다. 당시 회의에선 김 총비서가 같은 해 1월 지시한 영토 조항 신설과 통일 관련 표현 삭제 등 이른바 '남북 적대적 두 국가' 노선 강화를 위한 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북한은 당시 회의 직후인 10월 15일에 '단절 조치'에 따라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 연결 도로를 모두 파괴한 뒤 "이는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에 따른 합법적인 조치"라며 헌법 개정 사실을 간접적으로 밝힌 바 있다.

지난해 회의는 9월 20일에 열렸고, 8월 20일에 일정이 발표됐다. 김 총비서는 당시 연설에서 "미국이 비핵화 요구를 포기하고 현실을 인정한다면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조건부의 대화 의지가 있음을 시사해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전례를 고려하면 김 총비서는 올해도 하반기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대내외에 국정 운영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 혹은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북한이 회의 일정을 공고하지 않는 것을 두고 내부적으로 최고지도자의 메시지 조율에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나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을 당시 사진. 2019.6.30 ⓒ 로이터=뉴스1
트럼프는 계속 손짓…北, 대미 메시지 수위 놓고 '고심'?

관심 사항은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스처에 대한 김 총비서의 '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 연합연습을 전격 축소하고, 김 총비서와 연내 정상회담을 열 용의가 있음을 밝히면서 다시 북미 대화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의 담화로 연합연습의 축소는 의미가 없으며, 미국이 자신들의 '현재 입지' 즉 핵보유국으로서의 북한의 입지 제고를 인정하고 대북제재 등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등 8년 전 비핵화 협상 때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김 총비서 본인은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직접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북미 대화를 여전히 '최고지도자의 결정 사항'으로 남겨놓음으로써 미국과의 외교에 여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행보라는 해석이 우세한 상황이다.

반면 최고인민회의 회의 일정 지연과 북미 관계를 직접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이 급하게 대외 노선을 조정할 필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2023년부터 각종 군사 협력을 통해 러시아와 사실상 동맹 관계가 됐다. 북러 밀착 과정에서 멀어지는 듯했던 중국과의 관계도 올해 6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7년 만의 방북을 통해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이제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를 인정하지 않는 행보를 보이면서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당장 미국으로부터의 제재 해제나 이를 위한 핵능력 포기라는 카드를 먼저 선택할 필요가 없게 됐다. 북한의 입장에선 당장 우군과의 관계 지속을 통한 이익 극대화로 국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이날 1면 사설을 통해 "당의 영도하에 전면적 발전기를 확실하게 열어나가는 우리 조국은 경이적 성과를 다발적으로, 연발적으로 이룩하고 있다"라며 현재의 북한이 '국력 상승기'에 있음을 거듭 과시했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