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노동당 규약에 '전시' 대응 조항 첫 삽입…"유사시 지휘체계 공백 보완"

정치국에 지도부 구성 등 전시 중요 문제 결정권 부여…김정은 '유고' 대비
"남북 두 국가 체제 아래 유사시 대응 규범화"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북한이 제9차 노동당 대회에서 개정한 당 규약에 사상 처음으로 '전시' 관련 조항을 신설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전쟁 등 유사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때 당 정치국이 관련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를 '적대적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현 정세가 '긴장된 상황'임을 강조하는 북한이 대남·통일노선을 당 규약에서 삭제하면서 유사시 대응 방안을 당 규약에 명시했다는 점에서, 당장은 대화와 협상에 나설 의지가 크지 않음이 재확인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북한의 제9차 당 대회 개정 '당 규약' 분석 및 북한 정세 평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전략연에 따르면 지난 2월 제9차 당 대회에서 개정된 노동당 규약에는 '당 지도기관 성원의 전시 활동 원칙'을 규정한 제15조와 '정치국의 전시 권한'을 명시한 제27조가 새롭게 들어갔다. 북한 노동당 규약에 '전시' 관련 별도 조항이 신설된 것은 처음이다.

구체적으로 개정 당 규약은 새로 임명된 책임간부가 당 지도기관 성원이 되기 위해 거치도록 한 선거 절차를 전시에는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당 정치국에 전시 중요 문제 결정권을 부여했다. 쉽게 말해 유사시엔 간부들의 인사 문제를 평시와 같은 절차 없이도 처리할 수 있으며, 이는 노동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이 담당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략연은 이를 유사시 위기관리 지휘체계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했다.

김인태 전략연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말하는 전시의 당적 지도 관행을 규약에 성문화시킨 것으로 평가한다"며 "유사시 당 중앙위원회를 대체하는 정치국 중심의 국방 지휘체계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이어 "전시 관련 내용이 들어간 것은 남조선 혁명론과 통일론 등 '두 국가'와 관련된 내용이 노동당 규약에서 삭제된 것과 함께 봐야 한다"며 "전쟁 대비 기조의 상시화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당장 '전쟁'을 준비하는 동향으로 볼 수는 없지만 앞으로 상당 기간 각 분야별 사상전과 당·정·군을 비롯한 각종 조직 구성 체계 및 인사 문제 등에 '전시'를 상정한 논리와 개념을 반영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남북을 '국가 대 국가'로 보는 관점에서 전시를 상정한 새 법규나 조직이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국제법 등에 기반한 조치를 취하며 남북의 서로 다른 국가성을 더 부각하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북한은 이미 2024년 6월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 전원회의를 통해 당 규약 서문에서 '남조선 혁명론'과 '통일전선 과업' 등 대남·통일 관련 문구를 전면 삭제했으며 이번 9차 당 대회 규약에서도 이를 유지했다는 것이 전략연의 판단이다.

다만 전략연은 "당 규약상 '남조선 혁명론'이 명확히 삭제된 것은 맞지만 당 규약과 헌법에 '적대적'이라는 표현을 명문화하진 않았다"며 "'두 국가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향후 남북 관계에서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을 남겨 놓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노동당 총비서'(김정은)의 권한도 구체적으로 명문화됐다. 김 총비서는 정치국회의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소집·사회(주재)하고 중요 간부를 임면하는 것은 물론 당원 입·출당과 당 조직·당 기관 부서 해산 권한도 갖게 됐다.

전략연은 김 총비서가 이미 이 같은 권한을 행사해 왔음에도 새삼 이를 당 규약에 규범화한 것은 '유일영도체계' 강화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번 당 규약 및 최근의 헌법 정비가 종합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성격에 맞게 전반적인 통치 규범을 바꿨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