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평양에 갈 결심을 할 수 있을까?[정창현의 북한읽기]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잊을 만하면 과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관심을 끌어왔다. 지난달 15일(이하 현지시각)에도 그는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김 총비서와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올려 개인적 친분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긴 했다. 그는 사진을 공개한 다음 날 한미 연합연습(을지 자유의 방패·UFS) 축소를 전격 지시했고, 17일 백악관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취재진과 만나 "김정은이 응답했다"며 "김정은은 항상 나를 매우 존중해 주었다"라고 북한 측과 소통 사실을 공개했다. 단순히 사진을 올려 김 총비서와 친분을 과시한 것을 넘어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온 연합연습을 축소하는 '우호적 신호'를 보내며 북한 측과 소통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총비서 간 소통 사실이 전해지자 18일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포함한 다음 아시아 순방 기간에 김 총비서와 대면하는 방안을 비공개로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북미 정상회담이 연내에 진행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재차 "그렇다. 그럴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24일에 김 총비서와 함께 찍은 사진 3장을 또다시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제스처가 이어지자 한국 정부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통일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연합연습 축소 조치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통 큰 결단'이라고 평가하며 북한이 북미 대화 재개에 호응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소통 사실을 즉각 부인했다. 북한의 대외 담당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19일 밤늦은 시간에 발표한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총비서와 '소통'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며 "아마도 우리 최고지도부의 대외 정책과 관련해 내가 알지 못하는 유일한 사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회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한 셈이다.
북한 측 반응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 북미 간 비공식 접촉 등 물밑 소통에 기반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분석과 북한이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두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반응이라는 엇갈린 분석이 나왔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물밑 접촉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총비서에게 여러 차례 친서를 전달하려고 했으나 '뉴욕 채널'의 북한 외교관들이 수령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북한 측이 입장을 바꿔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수령했고,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미 간에 직접적 소통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대다수 북한 전문가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북한이 여전히 김 총비서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친분을 거론하는 것을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과장 화법'을 사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설사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가 북한 측에 전달됐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 김 총비서가 친서로 화답했을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연내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유력하게 거론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정상회의 순방 기간에 김 총비서가 중국에 나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총비서와의 친분을 활용해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서는 여러 정치적, 외교적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평양을 방문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정상회담의 절차와 의제에 대한 분석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행이 가능한 상황인지부터 검토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6월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 총비서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조(북)미관계 수립, 조선반도(한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에 합의했다. 지난 2년여 동안 미국은 이러한 합의에 기초해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제3항인 '완전한 비핵화'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희망'하는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포기하거나 후순위로 돌리고 북미 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의제여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현재 입장이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당신의 목표는 여전히 비핵화인가. 첫 임기 때 성공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고 즉답을 피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정책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자 미국 국무부 당국자는 지난달 26일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대북 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답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북미 정상회담이 협상의 시작인지, 단순히 일회성 만남인지는 아직 모호하다. 이러한 미국의 정돈되지 않은 대북 메시지는 김 총비서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나서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국방성과 외무성에서도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중간선거용'인지, 자신의 정치적·외교적 업적을 남기기 위한 것인지 불확실하지만 실무회담과 의제 합의를 통한 정상적 방식의 '연내 회담'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본다. 북한은 성과가 불투명한 북미 대화보다는 러시아, 중국과의 전략적 교류와 협력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 보면 북한은 러시아와 연결되는 두만강의 자동차 교량 개통식을 9월 중에 열고, 중국과 연결되는 압록강의 신압록강대교 개통식을 10월 중에 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두 행사를 마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를 표방하며 평양행을 모색한다면 북한도 이를 적극 고려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한국과의 사전협의 없이 전격적으로 한미 연합연습 축소를 지시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부와 의회의 반대 분위기 속에서 '협상이 아닌 만남'을 위한 평양행을 추진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진 않은 결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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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