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메이커도, 페이스메이커도 아니다…韓 '평화 설계자'로 가야
'이재명 정부 2년 차 대북정책 방향' 세종연구소 보고서
위기관리→군비통제→비핵화 3단계…"NSC 중심 사전조율 필요"
-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북미대화 재개 기대감이 커진 가운데 한국이 남북관계를 앞세운 '피스메이커'나 북미대화를 지원하는 '페이스메이커'에 머물지 않고, 한반도 평화 규칙과 제도를 주도하는 '평화 설계자'로 나아가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이 19일 나왔다.
하태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최근 '피스메이커? 페이스메이커?―이재명 정부 2년 차 대북정책 방향'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조율된 답을 내놓을 차례"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수행하되, 한국이 한반도 평화의 규칙과 제도를 직접 설계하는 '규칙 기반 평화 설계자(Rules-Based Peace Architect)'로 역할을 확장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피스메이커'는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앞세워 북미대화와 비핵화를 견인하는 전략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의 설계자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구상에 기반한다. 반면 '페이스메이커'는 남북대화가 막힌 상황에서 미국이 북미 협상의 전면에 서고, 한국은 한미 간 조율로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이다.
하 연구위원은 피스메이커 전략에 대해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고, 이것이 비핵화 협상의 동력으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에 기반한다고 봤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언하면서 이런 전제가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한국을 통일의 상대가 아닌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모든 남북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곧 비핵화 협상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로 나선다면 나는 페이스메이커로서 돕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현실을 인정한 실용적 선택으로 평가했다. 다만 독자적인 전략이 없다면 한국이 미국을 뒤따르는 수동적 조력자에 머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 연구위원은 지난 5일 통일부 업무보고에 주목했다. 당시 통일부는 9·19 군사합의 복원과 평화체제 전환, 북미정상회담 견인, 남북미중 4자 대화 등을 담은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구상을 제시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게 한반도 평화 안정에 플러스냐, 의문"이라며 속도 조절을 주문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합의된 구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현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차이의 반영"이라며 이를 부처 간 갈등이 아니라 남북대화와 국제공조 가운데 무엇을 우선할지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로 봤다.
대안으로는 대북정책 목표를 단기 '위기관리·안정화', 중기 '확장억제·군비통제', 장기 '비핵화·평화체제'의 3단계로 재배열하자고 제언했다.
단기적으로는 경원선 복원과 'DMZ 평화의 길' 등 한국이 독자 시행할 수 있는 조치를 검토하되, 9·19 군사합의상 비행금지구역 복원처럼 대북 감시 공백과 유엔군사령부 관할권이 얽힌 사안은 '동맹 설득'의 문제로 재규정해 한미 조율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적으로는 군비통제를 한미일 공동 의제로 격상하고, 비핵화·평화체제 전환은 이런 성과가 축적된 뒤 추진할 장기 목표로 제시했다. 북한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관련국과의 조율 없는 발표가 협상의 신뢰 기반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하 연구위원은 외교부의 한미일 공조와 통일부의 남북대화·인도주의 정책도 대립적인 노선이 아닌 상호 보완 관계로 재구성하고, 이를 위해 새 대북 구상을 발표하기 전 NSC 중심의 사전 조율 절차를 명문화하자고 제언했다.
보고서 발간 다음 날인 지난 15일 나온 이 대통령의 광복절 구상은 이런 제언과 일부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페이스메이커 역할과 함께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라는 지위를 강조하며 "인식과 규범, 제도에서부터 적대성을 하나씩 줄여 나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끝으로 하 연구위원은 "한국에 필요한 것은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그 안에서 평화 설계자로 도약할 준비를 동시에 하는 일"이라며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 어떤 담판이 이루어지든 그 결과가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의 구조로 이어지도록 조건을 설계하는 일은 결국 집권 2년 차를 맞은 이재명 정부의 몫"이라고 밝혔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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