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보다 핵무력 우선 재확인한 북한[정창현의 북한읽기]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편집자주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노동당 중앙위원회 9기 2차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당 총비서.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이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개최해 올해 상반기 당과 국가 정책집행 상황을 중간총화(결산)하고, 하반기 사업과 일련의 중요 문제들을 토의했다. 노동당 전원회의는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 당 내외 주요 문제들을 논의·의결하는 기구다.

이번 당 전원회의 의제는 상반기 사업 진행 평가, '석탄공업을 추켜세우며 전국의 탄광마을을 개변시킬데 대하여'와 '시·군 인민위원회들의 역할을 높이기 위한 일련의 조치에 대하여' 결정서 채택, 조직문제 등 4가지였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첫 번째 의제와 관련해 "당 및 국가 정책 방향과 앞으로의 단기적 및 중장기적인 투쟁과업"을 밝히고 '중요 결론'을 내렸다. 북한 매체들은 '중요 결론' 중 '국가방위력 강화'와 관련된 사항만을 집중적으로 공개했다.

우선 핵무력을 중심으로 하는 자위적 억제력 강화 방침을 표방했다. 김 총비서는 "힘이 곧 국권이고 국위"라며 "자위적 억제력을 보다 확대·강화하기 위한 사업들을 더욱 공세적으로 추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그는 핵무력의 확대·강화와 해군력 강화 방침을 강조하고, 군수산업 기반 확대도 주문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이 자신들을 향한 '핵 위협'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를 핵무력 강화의 명분으로 삼았다. 특히 지난 2023년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워싱턴 선언'을 통해 출범한 한미의 확장억제 강화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의 회의내용을 겨냥했다. 한미는 지난 11일 서울에서 제6차 NCG 회의를 개최하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김 총비서는 NCG를 "공화국을 공격하기 위한 핵전쟁기구"로 규정하며, "지금까지 진행된 여섯 차례의 모의판(회의)들에서는 전쟁 방식과 임무절차, 훈련과 운영 요소에 이르기까지 세분화, 구체화한 핵전쟁 각본이 작성됐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그는 "공화국 군사 주권의 핵심이고 전쟁의 억제 및 수행 전략 실행에서 중추를 이루는 핵무력을 끊임없이 확대·강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철저히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복합적으로 변화하는 예측불가능한 국제 군사정치 형세에 주동적으로, 자신 있게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대남 대적투쟁 원칙을 재확인했다. 김 총비서는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한 우리 당의 대적 투쟁 원칙을 철저히 견지해야 한다"며 "현재 추진 중에 있는 남부 국경 요새화 공사를 질적으로 완결"할 것을 지시했다. 내고향축구단의 방남, 제주도의 인도적 지원 등이 대적 투쟁 원칙과 무관하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나머지 2개 의제와 관련된 결정서 채택은 북한이 최근 심혈을 기울이는 지방발전 정책을 확대하고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다. 특히 내년부터 전국의 탄광마을 살림집(주택)을 현대적으로 변화시키는 공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김 총비서는 지난 3월 23일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5개년 계획 기간 국가적 역량을 투입해 매해 2만여 세대씩 4년간 대대적인 건설사업을 진행해 탄광지구들을 완전히 일신시킬 것을 지시했는데, 이번 전원회의에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24년부터 20개 군(郡)을 대상으로 10년 안에 현대적 지방공장을 건설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방공장 건설만 발표됐으나 이후 농촌주택, 의료와 교육시설, 양곡저장시설, 종합봉사소 등이 건설 대상으로 확장되었고, 여기에 탄광마을 현대화 사업이 또다시 추가된 것이다. 막대한 재정 및 물적 자원의 필요성 때문에 북한의 지방발전 정책이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는 외부의 평가와 달리 북한은 사업범위를 더 늘려나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북한은 지방발전 사업이 "경제사업일 뿐만 아니라 지방 청년층을 키우는 정치사업"이라며 도시와 농촌의 격차 해소에 주력해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이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개최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이번 전원회의에서 확인된 북한의 정책노선과 방향은 올해 2월에 열린 9차 당 대회와 김 총비서의 3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시된 내용의 연장선상에 있다. 주목할 대목은 핵무력 확대와 대남 대적투쟁 원칙을 강조한 것이 최근 한미 정상의 '대화 제스처'에 대한 북한의 답변으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계정에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 김 총비서와 산책하는 사진을 올렸고, 곧바로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을 앞둔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협상 상대는 북한'이라는 메시지를 암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을 기해서 조용히 김정은의 친서가 도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의 해석에 힘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받고, 이에 대한 응답 차원으로 사진을 올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최근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핵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6월 19일 언론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될 때가 됐다"라고 말하며 북미 대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귀국 직후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은 한미 정상이 북한과 만나 협상하고 싶은 의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이 '간접적 경로'로 북한에 대화 의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은 커 보인다. 그러나 김 총비서는 직접적인 응답은 하지 않은 채,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한국과 미국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였다. 비핵화에 대한 압박과 적대시 정책의 폐기 없는 '전제 조건 없는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6월 8일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의 확장억제를 비판하고, 한·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움직임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에 대해서는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김 총비서는 9차 당 대회에서 미국이 자신들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핵보유국 입지를 인정하면 언제든 대화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미국과 한국이 당장 수용하기 어려운 '적대정책 폐기와 핵보유국 인정'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의 '단계적 해결법'을 언급하며 "미국이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다. 북한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 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북한의 핵 활동 '중단'을 실마리 삼아 북미 대화를 시작하고, 최종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대북 접근법을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핵 활동 중단이 아닌 핵무력의 확대 강화를 재확인했다. 이보다 앞서 북한은 새로 조업을 시작한 핵물질 생산공장(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을 공개하기도 했다.

북한이 핵무력 강화노선을 재확인하고, 중국도 공개적으로 북핵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정책전환을 한 상황에서 정부의 '단계적 해결법'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게 객관적 현실이다.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두 국가론을 수용하는 헌법 개정이나 남북협력사업 논의는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는 '남북 대화의 돌파구'에 연연하기보다는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에서 당면 목표로 설정한 '한반도 평화 공존의 제도화'를 위해 부처 간 이견 조정과 국민적 공감대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올해 발간할 새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하는 표현을 유지하겠다는 국방부,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상태에서 평화 공존을 추구할 순 없다는 통일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한미·미일 확장억제 협력은 정당한 대응이라는 외교부의 입장은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에 대해 과연 정부 차원에서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 내부의 공감대 확보와 제도화가 이뤄져야 장기적으로 정책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남북협력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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