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신의주농장 방문이 보여주는 것[정창현의 북한읽기]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편집자주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달 31일 신의주온실종합농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5월 31일 평안북도 신의주온실종합농장을 현지지도 했다. 올해 세 번째 방문이다. 김 총비서는 지난해 2월 착공식을 포함해 다섯 차례나 이곳을 방문했다. 올해도 새해 첫 현지지도로 이곳을 찾았고 2월 준공식에도 직접 참석한 바 있다. 북한은 2024년 여름 대규모 수해를 겪은 신의주시 위화도 일대에 여의도 면적(2.9㎢) 1.5배 수준의 주택단지와 대형 온실농장을 건설했다. 지난 2월 열린 제9차 노동당 대회에서는 이 농장에 대해 재난을 극복한 "국가 부흥 시대의 본보기적 창조물"로 평가했다.

북한 언론매체의 보도내용과 공개한 30여 장의 사진을 꼼꼼히 분석해 보면 여러 가지 주목할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김 총비서는 이번 현지지도에서 두 가지 사안을 점검했다. 하나는 농장의 경영관리 실태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발전 정책에 따라 농장지구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보건시설, 종합봉사소, 채소종합가공공장 건설 현황이다. 그는 온실농장을 둘러보고 농장 내에 새로 조성된 유채밭을 지나 건설 현장으로 이동했다.

그는 다양한 유형의 수경 및 토양온실들과 시험재배 온실들을 돌아보며 농장의 생산 및 남새(채소)과학연구정형(과정)과 경영관리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한 후 "남새 생산에서는 에네르기(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도 작물들의 품종별 생육조건에 따르는 효율적인 적정 환경을 보장해 주어 원가를 낮추고 사계절 남새를 재배하도록 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로 나선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생산과정에서의 전력·원가·사계절재배 문제 등과 함께 품종 다양화, 작업 기계화 확대, 운반수단의 자동화, 남새의 보관시설과 판매소 확장 등을 과제로 제기했다.

이러한 지적은 3월에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해 전력문제로 신의주농장의 44%만 가동되고 있다고 한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몇몇 언론매체의 보도내용을 일부 확인시켜 준다. 김 총비서가 지적한 전력·원가·사계절재배 등은 모두 겨울철 온실 운영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아직까지 온실 온도 유지를 위해 전력이 많이 드는 겨울철 3~4개월 정도는 농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는 현재의 농장 운영 수준에 대해 질책보다는 농업근로자들의 헌신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신의주온실종합농장의 1150여 동의 온실들에서 수십 종에 달하는 갖가지 남새들을 매일 수백 톤씩 수확하여 애육원과 육아원, 초등학원들과 상업 단위들에 정상적으로 보내주어 지역인민들의 식생활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는 성과에 만족해했다고 한다. 북한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전력 공급 문제를 중장기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온실농장에 이어 꽃이 만발한 유채밭을 둘러봤다. 식용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채유 생산을 통해 이를 보완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단순히 관상용으로 유채를 대규모로 재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김 총비서는 현재 50% 정도 건설된 위화도지구의 종합봉사소와 병원, 공장건물을 둘러봤다. 그는 건설 중인 건물들을 본 후 "현대적인 병원과 다기능화 된 봉사소, 전문화된 남새종합가공공장까지 완공되면 위화도지구는 새 시대 지방 변천의 본보기, 표준으로 또다시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제9차 당 대회에서 향후 5년 동안 주택 37만 세대, 300여 개 지방공업공장, 60여 개 양식사업소, 100여 개 학교와 병원, 평양시 정비 등을 건설 부문의 과제로 선정했다. 위화도지구가 군(郡)단위는 아니지만 지방발전 정책 세 번째 해 사업대상으로 삼아 새로운 '본보기'로 창출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김 총비서가 건설공사 현장을 둘러본 후 "건설부대들의 전문성이 일층 제고되고 기능공대열이 강화"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한 대목이다. 북한은 군 단위에서 지방공장 건설사업을 위해 인민군의 각 군단 및 군단급 부대들에 '124연대'를 신설했는데, 이 부대 군인건설자들의 경험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료 이후 러시아 및 점령지 재건사업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김 총비서의 현지지도에는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비서들이 대거 동행해 신의주온실농장지구를 본보기로 건설하고, 다른 지방에 확산시키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11명의 비서 중 김재룡(조직), 리일환(선전), 정경택(군정), 신영일(규율), 주창일(근로단체) 등이 동행했고, 주철규 농업부장, 김여정 총무부장의 모습도 확인된다. 또한 리설주 여사와 딸 김주애, 현송월 부부장도 동행했다.

대규모 수행단과 함께 진행한 김 총비서의 신의주 현지지도는 단순히 온실농장지구 건설에 그치지 않고 신의주시를 '국경관문도시'로 개발하기 위한 큰 그림일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북중관계로 미뤄진 신의주시 개발이 다시 본궤도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2018년 신의주시 현지지도 때 '신의주시 건설총계획'을 보고받고 수정을 지시하면서 수년 내 국경도시 건설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달 31일 신의주온실종합농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설이 불거진 후 신의주를 방문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시 주석은 3월 20일 베이징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뒤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1991년 체결한 국경 동부 구간 협정에 따라 조선(북한)과 함께 두만강 출해(出海) 문제에 관한 3자 협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동해로 연결되는 중국의 해상 통로 확보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다. 중국이 '두만강 출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북한 측의 동의가 필요하고, 동의의 대가로 대대적인 북중 경제협력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문제는 북·중·러를 비롯해 다자가 참여하는 '두만강-연해주 개발 프로젝트'의 진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북한도 신의주를 거점으로 하는 중국과의 경제 교류, 라선시와 연해주를 잇는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월 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총비서와 회담했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극동 연해주의 올레크 코제먀코 주지사와 면담한 자리에서 "우리는 연해주가 조선(북한)과의 교역에서 중개 역할을 해주길 몹시 기대한다"면서 "김 총비서가 이 구상을 지지했다"라고 설명했다.

철도역과 의주비행장을 현대적으로 개건하는 사업이 포함된 신의주시 재건설은 연차별로, 단계별로 추진될 수밖에 없고, 단기간에 일정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편, 김 총비서와 동행한 간부들이 유채밭을 걸을 때 찍은 사진을 보면 김주애는 김 총비서의 옆에, 리설주 여사는 중간쯤, 그 뒤에 현송월 부부장, 그리고 맨 뒤에 김여정 부장이 따르는 모습이다.

최근 관례대로 김주애는 김 총비서 바로 옆에서 걷거나 설명을 듣는 모습으로 연출됐다. 이러한 모습은 1960년대 초반 대학시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당시 수상)을 수행해 농촌이나 군부대 방문했을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학교, 대학교 학생시절 김일성 주석을 수행했을 때 카메라로 사진을 찍거나 수첩에 기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주애는 아직까지 다른 간부들처럼 지시사항을 수첩에 적는 모습은 나온 적이 없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중학교 시절부터 중앙당 청사에 출입했고, 1959년(당시 17세) 김일성 수상의 모스크바 방문에 동행했을 때는 부관이니 수행원들을 모아 놓고 구체적인 일들을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전혀 거론되지 않을 때였다.

김정은 총비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때 수행한 사례가 있지만 역시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과거의 전례로 볼 때 김주애가 최고지도자의 딸 자격으로 동행하는 것인지,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설사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하더라고 나이를 고려하면 후계자 지명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만 리설주 여사나 김여정 부장이 의도적으로 김주애가 주목을 받도록 행동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김 총비서의 현지지도에 거의 빠짐없이 수행하는 현송월 선전선동부 행사과(추정) 부부장은 지난해 12월 사망한 김창선 국무위원회 의전부장을 대신해 국무위원장의 의전 실무책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달 31일 신의주온실종합농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또한 김여정 부장의 당내 위상과 역할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번 신의주농장 현지지도처럼 수행단의 맨 끝자리에 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지만 제9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여정이 정치국 후보위원 겸 총무부장으로 승진하면서 활동범위가 더 넓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무위원회 위원에서는 물러났지만 김 부장은 여전히 대외·대남정책과 관련 담화문을 내고 있고, 정상회담 때는 김 총비서가 사인한 합의문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 총비서의 서기실장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서기실장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책임자가 된 당 총무부는 총비서의 지시와 당 방침을 배포·총괄 관리하고 집행 상황을 점검하는 역할을 맡는다. 당내 주요 문서의 실무적 관리 역시 당 조직지도부 총무과와 협업해 총무부가 담당한다.

북한의 당 간부는 <인민경제계획수행총화보고서>, <지도사업요강>, <지도사업총화보고서>, <통보서> 등 다양한 종류의 보고서와 회의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최고지도자의 <말씀집행계획서>다. 이 계획서는 총비서의 지시나 지침을 새로 접수하고 그 집행대책을 토의할 때 작성한다. 북한 내부자료에 따르면 이 계획서를 작성할 때 두 가지 원칙에 따라야 한다.

"첫째로 말씀을 관철하기 위한 해당 단위의 활동방향을 구체적으로 명백히 제기하는 것이며, 둘째로 해당 부문과 단위에 잠재하고 있는 예비와 가능성을 최대한 동원하여 말씀을 빠른 기간에 철저히 관철할 수 있게 세우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말씀집행계획서>에는 지침의 당내 전파와 연구사업, 집행을 위한 토의사업, 집행기간, 집행자 등을 명기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지침을 관철하기 위해 정치사업, 행정조직지도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적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중간총화(결산), 완전총화를 언제, 어떤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할지 밝혀야 한다.

통상적으로 <말씀집행계획서>는 조직지도부에서 작성, 지도되지만 총무부는 이 계획서의 집행 상황을 점검하며 개입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은 총비서의 '복심'으로 평가받는 김여정이 총무부장에 임명됐기 때문에 총무부의 개입 범위는 과거보다 더 커졌을 것이다. 집행 상황이 미진하다고 보면 조직지도부 검열과에 해당 단위에 대한 검열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의 역대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공식 직제상의 서열을 뛰어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문고리 권력'이란 별명이 붙였던 것과 흡사하게 김여정 총무부장은 과거 당내 2인자라고 평가받던 조직비서보다 서열은 낮지만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위에 있는 것이다. 조용원 조직비서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옮겨가고 당내 기반이 뚜렷하지 않은 김재룡 조직비서체제에서는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다.

김여정 총무부장이 앞에 나서지 않고 맨 뒷자리에서 수행하는 모습은 김주애의 등장으로 권한이 축소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면서 스스로 조심하는 행동일 것이다. 북한은 2021년 제8차 당 대회에서 개정한 당규약을 통해 '총비서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직책을 신설했다. 아직까지 제1비서가 공식 임명되지는 않았지만, 김여정 총무부장이 사실상 제1비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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