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이념의 변화로 본 북한의 헌법 개정[정창현의 북한읽기]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북한은 지난 3월 23일 진행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 회의에서 김정은시대의 핵심 정치이념인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전면적으로 반영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했다. 이번 개정 헌법의 특징은 권력 구조 측면에서 국무위원장 권한의 대폭 강화와 핵 지휘권 명문화, 영토조항 신설과 통일 관련 문구 삭제를 통한 '두 국가론' 법제화 등 여러 측면에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헌법을 "정치·경제·문화생활을 비롯한 국가사회생활의 원칙들을 전면적으로 규제하고, 다른 모든 법규범과 규정 작성의 방향과 기준을 주는 국가의 기본법"이라고 규정한다. 북한의 경우 당·국가체제의 특성상 헌법은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과 노선을 반영해 국가사회제도와 국가활동 원칙을 법적으로 세우고, 국가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헌법은 나라의 역사적 경험, 정치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시대의 성격과 정책,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개정된다. 북한의 헌법도 정권 수립과 함께 제정된 첫 헌법부터 이번 개정까지 지도사상의 전환과 국가기구의 변화에 맞춰 19차례 개정(수정과 보충)이 이뤄졌다. 북한 사회에서 이번 헌법 개정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도이념의 변화가 헌법에 어떻게 반영되어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8년 제정된 북한의 첫 헌법에는 지도이념이 명기되어 있지 않았다. 주권이 인민에게 있으며, 지방 인민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주권을 행사하는 '인민민주주의 국가'라는 점만을 밝혔다.
북한이 헌법에 지도이념을 처음 명기한 것은 1972년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 때였다. 이때 헌법 제4조에 "맑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조선로동당의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1992년 개정 헌법에는 '맑스-레닌주의'가 삭제되고 독자적인 '주체사상'만을 지도적 지침으로 내세웠다.
2009년 헌법 개정 때는 제3조에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규정하며 '선군사상'이 지도이념으로 추가됐고, '선군혁명노선'이라는 표현도 들어갔다. 김일성 주석 사망 후 4년 뒤에 이뤄진 1998년의 헌법 개정 때 국방위원회의 위상을 '주권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으로 격상되었지만 '선군사상'의 지도이념 격상은 '온 당의 선군사상화', '전 사회의 선군사상화'가 진행된 뒤에 이뤄진 것이다.
김정은체제가 출범한 후에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정식화하고, 조선노동당 규약에도 당의 최종 목적으로 기존의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대체해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명기했다. 그러나 2012년 헌법 개정 때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지도이념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뒤에야 북한은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는 대신,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 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헌법 조항에 넣어 국가의 공식 최고 이념으로 격상시켰다.
지난 3월에 개정된 헌법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 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하며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국가 건설의 총적 방향, 총적 목표로 한다"라며 지도이념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유지되었다.
헌법 개정사를 통해 볼 때 북한의 지도이념은 '맑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적용한 주체사상'→주체사상(김일성주의)→주체사상과 선군사상→김일성-김정일주의로 변화되어 왔고, 지도사상의 변화할 때마다 큰 폭의 헌법 개정이 단행됐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현재 당 규약과 헌법에 명기된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사실상 김정은사상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일성-김정일주의가 곧 김정은사상은 아니다. 북한은 '김정은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전면적으로 계승하고 새로운 높은 단계로 심화 발전시킨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본질적 측면에서는 같다고 주장한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2013년 1월 29일 제4차 당세포 비서대회 연설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본질은 인민대중제일주의"라고 규정했다. 북한은 김정은사상에 대해 "인민대중제일주의이념을 대전제로 하여 인민대중 중심의 혁명철학과 혁명이론, 영도방법을 밝혀주는 인민대중제일주의사상, 위민헌신의 사상"이라고 규정한다.
김 총비서가 규정한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본질과 북한이 개념화하고 있는 김정은사상의 본질이 인민대중제일주의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다만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시대적, 실천적 확장이 김정은사상이라고 본다.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진수를 이루는 것이 주체사상이고, 이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와 사회역사원리, 지도적 원칙을 그대로 계승하고, 시대적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심화 발전시킨 원리와 원칙들을 담은 사상이 곧 김정은사상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내세우는 당과 국가의 총적 목표도 병렬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당 규약과 헌법은 '온 당과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내세우고 있다.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의 단상에도 "전당과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 하자"는 구호가 내걸렸다. 그러나 2021년 제8차 당 대회를 기점으로 '김정은사상'이 공식화되고, 북한의 언론매체들에는 '전 당과 온 사회를 김정은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일색화하자'는 주장이 빈번하게 실리고 있다. 북한 스스로도 김정은사상이 "당과 정부의 정치이념이자 정치방식으로, 전략전술이자 실천강령으로 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의 철학계나 사회과학원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소 이론가들도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아니라 김정은사상을 사상-이론-방법의 체계로 개념화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개정 헌법은 김정은사상이 전면적으로 구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개정 헌법 서문의 수정되거나 새로 추가된 내용들에 잘 나타난다. 특히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반영한 조항들이 대거 추가됐다.
우선 국가의 성격 규정에서 "조선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규정에 더해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문구가 추가됐다. 또한 헌법 서문에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확립하고 자주의 혁명노선을 견지하며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철저히 구현하는 것을 국가건설과 활동의 근본 원칙으로 한다"라는 문구와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인민대중의 요구와 이익을 최우선, 절대시하며 인민의 복리 증진을 자기 활동의 최고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기존의 "국가는 사회주의 법률제도를 완비하고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강화한다"는 조항도 "법률제도를 개선완비하고 법무생활을 강화하여 법이 인민을 지키고 인민이 법을 지키도록 한다"라고 수정 보충됐다.
이러한 조항들은 김정은 총비서가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국가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복리증진"을 정부의 중대한 과업으로 제시한 것과도 연결된다. 그는 시정연설에서 "세도와 관료주의를 비롯하여 인민적 성격에 배치되는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는 공간들을 찾아 예방하고 각방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인민들의 권익과 복리를 철저히 보장하는 견지에서 부문법들과 규정들을 부단히 개선해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국가 발전, 경제장성의 결과는 주요하게 인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서 나타나야 하며 인민들이 잘사는 것이 곧 국력이라는 것은 공화국 정부의 일관한 절대적 기준이며 활동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처럼 경제지표의 달성과 수치적인 경제성장율 보다 인민생활의 향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정된 헌법 서문과 김 총비서의 시정연설에는 '인민대중제일주의'가 깔려 있고, 이러한 언술체계는 김정은사상이 반영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단기간에 김정은사상이 '김정은주의' 용어로 격상되어 김일성-김정일주의와 함께 당 규약이나 헌법에 병기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총비서가 2023년 말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헌법 개정을 주문한 지 2년이나 늦게 헌법 개정이 이뤄진 것은 통일 관련 문구나 영토 조항 등에 대한 고민도 있었겠지만 김정은사상을 헌법 조문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내부 논쟁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민대중제일주의에 기초해 헌법 조문을 마련했다고 해서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김 총비서가 지난 3월 시정연설에서 "시대는 발전하고 대중은 원숙한 지도를 요구"하고 있다고 에둘러 지적했지만 '인민 복리와 멸사복무'를 표방해야 할 정도로 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의식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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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