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의 '냉정과 열정 사이'…北 선수단 맞는 복잡한 심경[한반도 GPS]

남북관계 장기간 경색 속 8년 만에 방한하는 北 선수단
마음 졸이다 신중해진 통일부…두 국가론 시대 속 각종 딜레마 공존

편집자주 ...한반도 외교안보의 오늘을 설명하고, 내일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짚어보겠습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국제축구연맹(FIFA) 2025년 17살 미만(U-17) 여자월드컵경기대회에서 우승한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의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8년 만에 방문하는 북한 선수단을 환영합니다.순수 민간 스포츠 경기인 만큼 차분하고 편안한 경기 운영이 되도록 협조할 예정입니다."

지난 4일 통일부 당국자가 북한 여자축구 클럽팀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한 소식을 알리며 한 말입니다. 북한 선수단이 오는 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전(4강)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이었는데요. 북한 선수단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경기에 참여하는 것은 무려 8년여 만이라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이들의 방한을 앞두고 매우 조심스러운 분위기입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대회를 주최하는 게 한국이 아닌 AFC라는 국제 조직인 만큼, 정부는 북한 선수들이 별 탈 없이 경기를 치르고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집중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대회와 관련한 통일부의 역할을 묻자 "정부가 개입하는 건 좀 아닌 거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통일부는 오랜 시간 단절된 남북 간 대화의 끈을 다시 잇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여왔죠. 그런데 정작 북한 선수단의 이례적인 한국 방문을 앞두고 '예상 밖의 신중함'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로키' 대응하는 통일부…정치적 의미 부여 피하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정은 북흔 노동당 총비서.(자료사진)

우선 북한의 이번 방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통일부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AFC 규정에 따르면, 북한이 이번 준결승 경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과 출전 제한 등의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요. 지난 2024년 FIFA U-20과 U-17 여자월드컵을 동시에 제패하며 스스로를 '여자 축구 강국'이라고 자랑해 온 북한 입장에서는 우승 기회를 포기하면서 페널티까지 안기에는 아쉬움이 컸을 테죠.

결국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내세우던 북한이 갑자기 한국행을 택한 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우리가 나서서 북한의 방한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다가는 자칫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정부 내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 온 선수단이 공항이나 경기장 등 공개된 장소에서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거나, 혹은 대회 시작도 전에 방한 자체를 취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이 '북한이 방한하는 의미를 평가해달라'고 요청하자 "아직 경기 시작 전이고, 경기가 열리기까지 시간이 꽤 남아있어서 어떤 평가를 하기보다는 이 행사가 잘 진행되도록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라며 말을 아꼈습니다.

통일부의 로키(low key) 대응에는 얼마 전 '무인기 사태'를 둘러싼 남북 간 엇박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6일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우리 민간의 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유감 표명을 두고 "대단히 다행스럽고 스스로를 위한 현명한 처사"라며 김정은 당 총비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내용의 담화를 냈습니다.

이에 청와대와 통일부가 "남북 정상 간 신속한 상호 의사 확인"이 이뤄졌다며 "한반도 평화 공존으로 나가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낙관적인 해석을 내놓자, 이튿날 장금철 외무성 제1부상 겸 10국 국장이 곧바로 "희망섞인 해몽"이라고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정부의 정세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고 조롱한 셈입니다.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북한 지도부가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인데, 이 역시 통일부가 이번 방한을 두고 마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8년 전과는 확 달라진 한반도 정세…새로운 남북관계 보여줄 계기 될까
정동영 통일부 장관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5.6 ⓒ 뉴스1 허경 기자

계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을 향해 적극적으로 '대화의 손짓'을 보내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 그는 이번에도 4강전이 열리는 수원종합운동장을 직접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요. 김정은 정권이 대화를 거부하는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정 장관의 방문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마지막까지 고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3월 호주에서 열린 여자축구 아시안컵 국가대표 대항전 현장. 당시 현지 교포 등으로 구성된 한국 응원단이 북한 선수단을 향해 "조선 이겨라"라고 외치자 선수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됐습니다. 북한이 반발감을 드러내 온 '북한' 대신 공식 국호인 '조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자 호응을 한 셈입니다.

최근 통일부도 남북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죠. 상호 적대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통일을 추진하기보다는, 우선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평화적 공존'을 지향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그 일환으로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라고 부르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번 북한 선수단의 방한이 8년 전과는 달라진 한반도의 현주소를 보여줄 장면으로 기록될지를 지켜봐야겠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내고향팀의 방한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도록 경기를 잘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는데요. 과거처럼 스포츠가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어줄 결정적인 마중물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남과 북이 각각 서로를 적대적이지 않은 태도로 대하는 방식을 찾을 하나의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