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주기식 담화로 '재등장'한 北 장금철…김여정 '실수' 막았나
7년 전 '대남통' 장금철, 외무성 제1부상 오른 뒤 첫 담화
한국 향해 막말하며 김여정 담화 '확대 해석' 차단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북한이 우리 정부가 지난 6일 발표된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의 담화를 이재명 대통령의 '무인기 사건 유감 표명'에 대한 호응이라고 평가하자, 이는 "멍청한 바보들의 희망 섞인 해몽"이라며 막말로 거칠게 반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례적으로 심야 시간에 대남 담화를 발표하며 한국을 향해 "비루먹은 개들"이라는 거친 표현을 퍼붓기도 했는데, 김여정 부장의 담화가 본래 자신들의 의도에서 벗어나 '남북관계 개선'의 시그널로 해석되는 것을 급히 차단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8일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김 부장의 담화가 '정중하게' 나온 것에 대해 북한 내부에서도 문제 제기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장금철 외무성 제1부상 겸 10국 국장은 지난 7일 밤 11시쯤 '가장 적대적인 적수국가인 한국의 정체성은 변할 수 없다'라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김 부장의 담화에 대한 청와대를 포함한 한국 내 각계의 분석이 참으로 가관"이라고 밝혔다.
장 국장은 "한국 측이 우리의 신속한 반응을 놓고 '이례적인 우호적 반응', '정상들 사이의 신속한 호상(상호) 의사 확인'으로 받아들이며 개꿈 같은 소리를 한다면 이 역시 세인을 놀래 우는 멍청한 바보들의 '희망 섞인 해몽'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국장의 담화는 앞서 이 대통령이 지난 6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우리 민간의 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에 유감을 표명하고 같은 날 밤 김여정 부장이 담화에서 "대단히 다행스럽고 스스로를 위한 현명한 처사라고 우리 정부는 평가한다"며 "우리 국가수반(김정은)은 이를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했다"라고 밝힌 뒤 벌어진 상황을 겨냥한 것이다.
김 부장이 '막말 비난'을 자제하고 이 대통령에 대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후한 평가'가 나오자 청와대와 통일부는 "남북 양 정상의 의사가 신속하게 확인되고 소통이 이뤄진 것으로, 한반도 평화 공존을 향해 나아가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밝히며 남북관계에 변화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장 국장은 그러나 전날 밤 전격 발표한 담화에서 "(한국이) 말귀가 어두워 알아듣지 못하길래 내가 읽은 (김여정) 담화의 속내를 일깨워주고자 한다"며 한국 정부의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는 게 자신이 나선 이유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김 부장 담화의 핵심은 '분명한 경고'였다면서, 자신이 해석한 담화의 속뜻은 "너희(한국)가 안전하게 살려면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 죄를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뻔뻔스러운 것들 무리 속에 그래도 괜찮게 솔직한 인간도 있었는데...? 안전하게 살려면 (무인기 사건의) 재발을 막아라"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내가 읽은 담화의 기본 줄거리"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 부장 담화의 의도는 무인기 사건에 대한 이 대통령의 책임 인정을 수용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기 위한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괜찮은 사람' 정도로 평가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장 국장의 담화는 형식적으로 마치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구술하듯 나왔다. 장 국장이 대남 관련 사안에 결정 권한이 없음에도 '내가 읽은' 등의 표현이 포함됐거나 '그래도 괜찮게 솔직한 인간도 있었는데...?'라는 완성되지 않은 듯한 문장이 포함된 것도 특징이다. 통상 공식 담화에서 '내가' 등의 1인칭 주어는 김정은 총비서의 '스피커'로서 예외적인 권력을 지닌 김여정 부장 정도만 써왔다.
또한 장 국장은 담화의 주체이면서도 당국의 입장을 강조하기보다 김 부장의 '진의'를 전달하는 데 주력하기도 했다. 김 부장이 자신과의 대화에서 지난달 30일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에 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을 두고 "동네 개들이 지어대니 무작정 따라 짖는 비루먹은 개들"이라고 비난했다는 것이 사례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이례적 담화의 기저에 노동당 내에서 최고지도부의 메시지가 예상과는 다르게 외부에 비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당혹감이 제기됐을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한다. 김 부장의 담화가 마치 '남북관계의 전환'에 대한 북한의 나름의 계산 및 의도가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부담을 느껴, 김 부장이 한국을 '개'라고 표현했음을 뒤늦게 강조하며 김 부장의 '실수'를 덮으려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장 국장의 담화는 대남용 담화임에도, 북한이 통상 워싱턴D.C의 업무 개시 시간에 맞춰 입장을 발표하는 심야 시간(밤 11시)에 나온 것이 특징이다. 장 국장의 담화가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급하게 나왔거나, 한국 정부의 판단을 미국이 무분별하게 수용해 적극적 대북 제스처를 던질 것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한편, 김 부장이 우리 정부의 판단을 직접 반박하지 않고 '부하'인 장 국장이 등장한 것은 둘의 역할을 분리해 향후 지도부의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는 전략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혹시 모를 대외 전략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지도부 차원에서는 절제된 입장만을 표하되, 좀 더 노골적인 메시지는 실무선에서 발신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남북 교류사업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진 장 국장은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로 정세가 악화했을 때 노동당의 대남부서인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바 있다. 그는 같은 해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총비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3자 회동' 때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 외엔 공개활동이 많지 않았다.
2019년 10월 김 총비서가 금강산관광지구를 찾아 '너절한 남측 시설을 들어내라'라는 지시를 했을 때 동행하고,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한 담화를 내는 등 공세적 대남사업 때 실무 책임자를 맡은 이력이 두드러진다.
이후 분명한 이유 없이 권력구도에서 사라졌던 장 국장은 지난 2월 노동당 9차 대회를 계기로 다시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대남사업 복귀 가능성이 제기됐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그가 외무성 제1부상 겸 노동당 10국(구 통일전선부) 국장을 겸임하는 것으로 파악했고, 북한 역시 전날의 담화로 장 국장의 직함을 공식 확인했다.
장 국장의 담화를 통해 북한의 '남북 두 국가' 선언 이후 축소된 통일전선부의 새 이름인 당 10국이 노동당의 전문부서에서 내각 산하의 외무성에 편입됐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이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다루기 위한 제도적 개편을 마쳤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장 국장이 조직 구조상 자신의 직속상관이라고 할 수 있는 최선희 외무상이 아닌 당 총무부장인 김여정 부장과 개인적 의견을 나누고 그의 의중을 담화로 전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여전히 대남사업을 '최고지도부'의 결정 사항으로 유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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