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종합시장, 축소인가 붕괴인가[정창현의 북한읽기]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편집자주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2003년 문을 연 통일거리시장에서 평양 시민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평화경제연구소

3년 전인 2023년 동평양의 락랑거리(옛 통일거리)에 '류경금빛상업중심' 건물이 완공돼 영업을 시작했다. '상업중심'은 중국에서 대형마트나 쇼핑몰이 밀집된 상업지구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북한은 "상업, 급양, 호텔, 사무구역을 포함한 종합적인 봉사기지"라고 규정한다.

평양에 '상업중심'이란 이름이 붙은 대형마트(슈퍼마켓)가 등장한 것은 2012년 광복백화점을 리모델링해 문을 연 '광복지구상업중심'이 시초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은 종합쇼핑센터로 의류, 가전, 식료품, 잡화, 생활용품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는 대형 상업시설이다. 어린이 놀이터, 미용실, 카페, 뷔페식당 등 편의시설도 함께 운영한다.

북한은 광복지구상업중심 개장 직후 대동강 건너편에 '통일거리상업봉사망' 건설에 착수했다. 그리고 무려 10년 만에 류경금빛상업중심을 완공했다. 류경금빛상업중심은 광복지구상업중심보다 7배 정도 규모가 큰 복합쇼핑몰이다. 지하 및 지상 20여 층 규모로 조성됐고, 상업시설뿐만 아니라 호텔, 사무실, 결혼식장 등 복합기능을 갖췄다.

주목할 대목은 이 복합쇼핑몰이 통일거리시장의 바로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전통(재래)시장의 바로 코앞에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마트가 들어선 셈이다. 당연히 낙랑구역(행정구역상 평양의 구역은 남쪽의 구에 해당)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통일거리시장의 매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2003년에 문을 연 통일거리시장은 북한의 첫 공식 '종합시장'(북한의 공식명칭은 '지역시장')이다. 2023년 말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 이후 '락랑시장'으로 바뀌었다가 최근 '금강시장'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2012년 1월 문을 연 북한 최초 대형마트인 '광복지구상업중심' 3층에서 식사하는 모습. ⓒ평화경제연구소

10일장으로 운영되던 농민시장이 1990년대에 최악의 경제난을 겪으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북한은 "최근 연간에 국가가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직업마저 버리고 장사나 하면서 자기 개인의 리속을 채우는 데로 나갔다"라고 비판하며 시장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후 북한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농민시장'(장마당)을 종합시장으로 공식화(합법화)하며 통제에서 활용으로 정책 변화를 시도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서재영 교수 등이 집필해 2005년에 출간한 <우리 당의 선군시대 경제사상해설>에는 '종합시장'을 "사회주의 상업의 한 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지역시장을 잘 운영하는 것은 현시기 인민생활을 안정향상시키는 데서 큰 의의가 있다. 지역시장은 사회주의사회의 과도적 특성을 반영한 사회주의사회에 있는 상업의 한 형태이다. 일군들은 지금 형편에서는 지역시장이 경제관리와 인민생활에 필요한 하나의 중요한 보충적 공간이라는 것을 옳게 인식하고 그를 잘 관리운영하도록 하여야 한다. 시장은 시, 군, 구역의 주민수와 지대적 특성을 고려하여 사람들이 리용하기 편리한 곳에 한 개 또는 몇 개씩 꾸려야 한다."

북한은 정부 당국이 투자해 조성한 통일거리시장을 본보기로 각 도시의 구역과 지방 군(郡) 단위에 2개 정도씩 종합시장을 공식화했다. 전국적으로 440여 개의 종합시장이 들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2,200여 개의 매대를 갖춘 통일거리시장은 개장 초기에 하루 이용객이 10만~15만 명에 달할 정도로 붐볐다.

이렇게 종합시장이 확산되자 일부에서는 북한의 시장화가 종합시장 공식화를 넘어 부동산과 노동력, 자본 등을 거래하는 단계로까지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9년에 개건된 평양 대성백화점 1층의 슈퍼마켓 모습. ⓒ평화경제연구소

그러나 코로나19사태로 국경이 봉쇄되어 해외제품 수입이 중단되고, 시장 개장 시간이 통제되면서 북한의 종합시장은 위기를 맞게 된다. 통일거리시장의 경우 이틀에 하루 개장하고 하루 2~3시간만 문을 열었다. 당연히 수입업자, 시장상인들의 수입이 급감했고, 시장을 떠나는 업자(‘돈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21년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를 기점으로 북한은 전국적으로 국영상업망의 복구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북한은 국가상업체계와 사회주의 상업 복원을 위한 조치로 국영상업망을 통한 상품 유통 활성화를 강조했다. 국가 주도의 유통 체계를 회복해 국가 재정수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점도 공공연히 표방했다.

우선 과거 계획경제 시기처럼 당국이 소비재를 일방적으로 유통하고 배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적 추세를 수용해 '생활상 편의 보장'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생산기업과의 직접 거래를 통해 상품을 자체조달하고 국정가격이 아닌 시장가격에 근접한 '합의가격'으로 자율 판매하는 구조로 국영상업망의 운영방식을 바꿨다. 국영상업망을 단순히 주민들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기능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주체로 변모시켜 종합시장과 경쟁하고 재정 수입도 늘리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러한 정책전환은 평양에서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12년 중국 자본을 유치해 문을 연 광복지구상업중심의 운영 경험을 기반으로 과거와 다른 상업시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2014년에는 평양에 처음으로 편의점 방식의 '황금벌상점'이 문을 열었다. 국영상점인 황금벌상점의 량승진 사장은 싱가포르에 있는 비정부기구(NGO) '조선익스체인지'가 제공한 창업교육을 받은 후 연쇄점(chain store) 형태의 편의점을 세 군데 개점했고, 이후 20여 개로 확장했다. 황금벌상점의 운영주체는 사회주의기업체인 황금벌무역회사다.

2015년 완공된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에는 대형마트인 창광상점과 미래상점이 조성됐고, 2017년 완공된 려명거리에는 상점, 약국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종합상업구’가 조성됐다. 최근 완공된 화성지구 고층 아파트단지에는 단지별로 1~3개씩의 편의점이 들어섰다고 한다.

또한 구역마다 설치돼 있던 기관이나 기업 직영의 직매점들도 특정 상품군에 한정해 판매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용품, 식품, 의류 등 다양한 상품을 팔 수 있게 됐다. 한국의 대형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는 못 미치지만 기업형 슈퍼마켓(SSM) 수준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로 다양한 소비층을 겨냥해 상업망이 다양해지고 있다. 2019년 개건해 문을 연 대성백화점이 대표적 사례이다. 과거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던 대성백화점은 1층에 슈퍼마켓을 조성해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2층 이상은 전자제품, 고급의류, 해외 수입품 중심으로 조성해 평양의 상류층을 주 고객으로 영업한다.

2014년에 처음 문을 연후 20여 개 체인점으로 늘어난 황금벌상점의 평양시 평천구역점의 외부 모습. ⓒ평화경제연구소

2023년에 락랑거리에 새로 들어선 류경금빛상업중심이나 '락랑거리애국금강관' 등도 1층은 슈퍼마켓, 2층부터 명품관으로 조성됐다. 낙랑애국금강관은 대형 복합 쇼핑몰로 이케아·스타벅스 등 서방 브랜드의 매장 구성과 비슷한 '유사품' 중심의 판매가 특징이다. 1층은 슈퍼마켓과 청량음료점이 있고, 2층은 가구, 3층은 가정용품과 뷔페, 4층은 가정용전기제품과 건제품, 5층은 식당과 찻집, 6층은 종합편의점과 아동놀이장, 7층은 종합체육운동실, 8층은 수영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형태의 상업시설은 과거 중국 단동역 앞 대형쇼핑센터를 찾아 명품을 구매하던 평양의 상류 소비층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은 류경금빛상업중심 앞 대동강변에 '평양금강호텔과 평양금강상업구' 건설을 본격화하고 있다. 2014년 착공식만 한 뒤 중단된 '동평양지구 상업거리' 조성사업이 이름을 바꿔 재개된 것으로 보인다.

평양 화성지구에도 대형 상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내각 대외경제성이 지난해 조중합작회사로 '중앙물자교류상사'를 설립하고, 약 6만 8000㎡ 규모의 종합 상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업단지는 건자재·가전·가구 등 중국 등 해외에서 들여온 다양한 물자를 취급하는 대형 도매·유통 거점으로 올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셋째로 새로운 상업플랫폼으로 등장한 전자상거래(온라인 쇼핑)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통망의 변화가 아닌 당국 주도의 새로운 상업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조치다. 세계적 추세를 수용한 국영상업망의 현대화이자 디지털화를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북한의 전자상업은 2015년 '옥류'라는 전자상점을 시작으로 본격화됐고, 이후 '만물상', '은파산', '앞날', '봄향기' 등 다양한 온라인 상점이 등장해 현재 20개 이상의 전자상점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전자상점은 식료품, 의약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 일상 소비재를 중심으로 수천 종의 상품과 음식, 기차표까지 취급하며, 배달과 결제까지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통합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대표적 전자상점인 만물상의 경우 2019년 기준 400여 개 기업이 입점해 450여 종, 6만여 개 상품을 유통하고 있다.

2017년 완공된 평양시 려명거리 중심부에 조성된 ‘종합상업구’의 모습. ⓒ평화경제연구소

평양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기존 백화점의 현대화, 주요 거리에 새로 들어서는 대형 복합쇼핑센터, 시대적 변화를 수용한 전자상거래 확산 등은 북한 당국의 통제강화가 아니더라도 종합시장의 위축과 축소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평양의 종합시장이 당면한 위기는 1990년대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시작된 전통(재래) 시장의 쇠퇴가 전자상거래의 발달로 더욱 심화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 유사하다. 평양의 소비자들도 낙후된 지역시장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편의점을 이용하거나 온라인 쇼핑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평양의 성공사례를 지방으로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방에도 대형 상점이나 '종합봉사소'가 속속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6월 신의주시에 2층 규모로 개장된 '신의주미래상점'이 출발점이고, 새로 건설되는 군 단위 주택단지에는 '종합봉사소' 안에 종합상점이 들어서고 있다.

종합봉사소는 2004년부터 추진 중인 '지방발전 20×10 정책'에 포함된 '3대 필수대상'(시·군병원, 종합봉사소, 양곡관리소) 중 하나다. 지난해에는 평양시 강동군, 함경남도 정평군, 개성시 개풍구역 등 3개 지역에 종합봉사소가 완공됐다. 종합봉사소는 영화관, 도서관, 체육시설, 상점, 미용실, 목욕탕, 식당 등이 한 공간에 집약된 복합시설이다. 상점에서는 식료품, 의류, 생활용품 외에 휴대전화를 포함한 전자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2023년 동평양의 락랑거리(옛 통일거리)에 건설돼 영업을 시작한 ‘류경금빛상업중심’과 현재 건설 중인 ‘평양금강상업구’의 모습. ⓒ평화경제연구소

특히 북한은 '지방발전 20×10 정책'에 따라 건설된 지방공업공장의 생산 물자가 지역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2023년부터 시장에서 식량 판매가 금지되면서 쌀이나 콩, 옥수수 등은 공식적으로 양곡판매소에서만 구매가 가능하게 됐다. 지역시장에서 수입품 거래도 단속 대상이 되어 백화점, 종합상점과 같은 국영상점에서만 사고팔 수 있게 됐다. 한편으로는 운영시간과 판매원의 나이 제한, 국가에 등록되지 않은 상품 판매 금지 등을 통해 지역시장을 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 지역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현대화된 국영상점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거리시장' 바로 옆에 건설된 '류경금빛상업중심'은 지난 30여 년 동안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 버팀목이 돼 준 종합시장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직 평양과 달리 지방의 국영상업망 복원은 시작단계이다. 한동안은 변모된 국영상업망과 종합시장이 공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10년간 매년 20개 군에 지방공업공장과 병원, 종합봉사소를 지어 인민들의 물질생활 수준을 개선하려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이 종료되면 지방의 지역시장들도 종합시장이 아닌 과거 농민시장 수준으로 위상이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전자상거래는 종합시장의 영역을 크게 잠식할 것이다. 물론 전자상거래에 필수적인 배송시스템이 전국적으로 갖춰지고, 지방에 계획대로 종합봉사소가 건설돼 상품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경우를 상정한 전망이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자금, 전력, 자재 등 북한 당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