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는 3일 애도하는데…정작 北은 '국위선양' 장웅 사망에 침묵
전문가 "북한의 부고엔 정치적 메시지 담겨"
장웅, 남북관계 유관 인사라 의도적 생략했을 가능성 커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북한이 장웅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사망 소식을 닷새째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 전·현직 고위직 간부가 사망했을 때 관영매체가 대대적으로 이를 보도하고, 최고지도자가 직접 애도하던 사례와 대조를 이뤄 눈길을 끈다.
2일 조선중앙통신·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는 지난달 29일 사망한 장 전 위원의 장례 등 관련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그의 사망 사실은 IOC가 전날인 1일 먼저 밝히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IOC는 애도의 뜻으로 스위스 로잔 올림픽 하우스에 3일간 조기를 게양하기로 했다.
북한은 그간 당·정·군의 고위 간부들이 사망하면 체제 공고화와 원로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부고를 크게 내곤 했다.
최근 사례로는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2025년 11월), 김기남 전 노동당 중앙위 선전선동담당 비서(2024년 5월), 현철해 전 국방성 총고문(2022년 5월) 등이 있다.
북한은 3대 지도자를 모두 모시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었던 김 전 상임위원장에 대해 "우리 당과 국가의 강화발전사에 특출한 공적을 남긴 노세대 혁명가 김영남 동지가 고귀한 생을 마쳤다"라고 그의 업적을 치하한 바 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김 전 상임위원장의 사망 당일 새벽 주요 간부들과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에 안치된 시신을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역시 3대 지도자를 모두 모시며 김씨 일가 우상화의 주역이었던 김기남 전 선전비서의 사망 때도 김 총비서는 직접 장의위원장을 맡고 빈소를 찾아 조문하는 등 최고의 예우를 했다.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는 김 선전비서에 대해 "김기남 동지는 우리 혁명의 사상적 순결성을 고수강화하고 사회주의 위업의 줄기찬 승리를 정치적으로 굳건히 담보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모든 것을 다 바쳤다"라고 치하했다.
김 총비서의 후계자 시절 '스승' 역할을 맡았던 현철해 전 국방성 총고문은 사망 후 가장 큰 대우를 받은 북한 간부 중 하나다. 대대적인 부고는 물론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진 데 이어 김 총비서는 그의 사망일 때마다 묘소를 찾아 직접 참배하고, 북한 매체는 이를 매년 주요 보도로 다루고 있다.
'권력자'가 아니어도 공과 업적이 분명하거나 최고지도자의 각별한 총애를 받는 등 상징성이 있는 인물들의 부고도 종종 의미 있게 전해졌다. 국립교향악단 연주가·모란봉악단 부단장 등을 역임한 작곡가 황진영(2025년 1월 사망)이나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반갑습니다'를 작곡한 리종오(2016년 11월 사망)의 경우 체제 선전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예우를 받았다.
이처럼 북한 간부들의 부고는 단순한 사망 소식 전달을 넘어 체제 선전과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부고에도 '기준'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체로 △전·현직 고위 간부 △최고지도자와 개인적 인연이 있는 인물 △대외 관계나 정세와 관련된 상징적 인물 등의 경우 대대적 부고의 대상이 되며,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해당 인물의 유명세와 별개로 부고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현시점 기준으로 장웅 전 위원이 북한의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는 인물로 분류됐을 수 있다"라고 짚었다. 다만 그는 "추후에 다른 방식으로 북한 매체에서 언급될 가능성은 있다"라고 덧붙였다.
장 전 위원은 북한의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해외에서의 폭넓은 활동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즈음까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북한을 대표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북한의 처음이자 마지막 IOC 위원이라는 점은, 그의 업적이 뚜렷함을 대변하는 경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그를 '푸대접'하는 듯한 모습을 두고, 그가 올림픽에서의 '남북 공동 입장'을 성사하는 등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한 것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의 부고를 크게 전할 경우 '적대국'인 한국에서 '조문 여론'이 발생하고, 장 전 위원의 국제적 위상과 업적을 고려했을 때 북한도 이를 마냥 거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미리 '상황 통제'에 나섰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난 장 전 위원은 농구 선수 출신으로, 1956년부터 1967년까지 북한 농구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은퇴 후 지도자로 활동했고 행정가로 변신, 북한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과 부회장을 역임했다. 1996년 IOC 총회 때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함께 IOC 위원에 선출되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장 전 위원은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선수단의 공동 입장이 이뤄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4년 난징 하계 청소년올림픽에서 세계태권도연맹과 북한 주도의 국제태권도연맹의 양해각서 체결 당시에도 큰 역할을 했다. 2023년 10월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제141차 IOC 총회에서 올림픽 훈장을 받았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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