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벗고 '정상국가화' 총력 기울이는 北…정보기관·경찰 신설에 주목
서구식 경찰제도 도입 선언…정장 입은 정보기관장 첫 등장
전문가 "국제사회 기준에서 '예외적 존재' 안 되려는 시도"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북한이 최근 정보기관과 경찰 권력 재편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들의 '군복'을 벗기고 새로운 조직으로 개편하는 것이 핵심으로, 김정은 시대의 특징인 이른바 '정상국가화' 작업에 탄력이 붙었다는 분석이 1일 다시 한번 제기된다.
북한은 최근 제9차 노동당 대회와 당 대회 결정의 제도화를 위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첫 회의를 계기로 권력기관 재편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동향을 노출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경찰 조직'을 신설하고 체제보위가 사명인 '국가보위성'을 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으로 바꾼 것이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달 22~23일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15기 1차 회의에서 한 시정연설에서 경찰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가의 내부안전과 사회적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적 규제를 완비하고 우리의 법률제도와 국가사회제도를 더욱 공고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경찰 제도를 신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경찰 기능은 그간 사회안전성이 맡아 왔다. 다만 사회안전성은 치안·주민 감시·통제 기능을 통해 체제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주요 기능으로, 민생치안을 챙기는 경찰이라기보다는 '비밀 경찰'에 가까운 역할을 해왔다. 사회안전성의 하부조직으로 일부 치안 업무와 국경 및 해안 경비를 수행하는 사회안전군이라는 조직도 있다.
사회안전성 인원은 대부분 군복을 입고, 군과 비슷한 계급체계를 운용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경찰보다는 군의 파생 조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이는 나치 독일의 비밀국가경찰(게슈타포) 등 다른 나라들이 이념의 시대에 운영했던 조직과 비슷한 성격으로, 김 총비서는 이같은 조직이 체제의 이미지와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총비서는 "치안유지사업을 보다 높은 수준에서 진행하기 위해 법투쟁분야를 세분화, 전문화한 경찰 제도를 수립하는 것은 당연하고 유익한 일"이라며 "경찰 제도를 만들면 국내에서 법기관들 사이의 사업한계를 명백히 구분하여 호상 연계와 협동을 원만히 보장하고 다른 나라 경찰기구들과의 협조를 실현하는 데도 유리하다"라고 일장 연설을 했다.
특히 김 총비서는 "경찰이라는 말 자체도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는 북한에서 경찰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이미지로 각인됐음을 시사한다. 일각에서는 '항일투쟁'을 체제 건설의 시발점으로 보는 북한이 과거 김일성 주석이 일본 경찰에 고문을 받았다는 등의 항일 서사를 구성해 온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반대로 김 총비서가 선대의 체제 설립 서사를 일부 부정하는 불편한 표현을 끌어와서까지 국가 체제의 개편이 절실함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그가 집권 기관 북한을 외부와의 정상적 교류가 가능한 체제로 만들겠다는 욕심이 예상보다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은 이번 최고인민회의 15기 회의에서 기존 국무위원회(청와대 격) 직속 조직이던 사회안전성을 내각 산하로 재배치하며, 사회안전성의 운영도 과거보다 투명하게 할 것임을 시사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이뤄지는 통상적인 활동들 속에서 튀거나 예외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기 위한 고민을 하는 것"이라며 "다만 국제사회와의 사법 공조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국무위원회 산하의 국가보위성의 이름을 국가정보국으로 개칭하기도 했다.
국가보위성은 1945년 창설 이후, 정치보위국·국가보위국·국가안전보위부·국가보위성 순으로 명칭을 바꿔왔다. 주요 기능은 방첩 및 정보 수집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씨 일가 체제 보위를 위한 활동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 조직으로 파악돼 왔다.
이 조직의 이름에 '정보'가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23일 보도에서 국가보위성의 상(相)인 리창대를 '국가정보국장'으로 호명했는데, 그간 군 상장(별 셋) 군복을 입고 있던 리창대가 돌연 양복을 입고 나온 사진을 공개하면서 기관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시사했다. 정부 내에서는 국가정보국이 앞으로 체제 보위를 위한 내부 활동보다 해외 정보기관과의 협력 활동에 주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적대적 두 국가'를 중심으로 철저한 배척·무시 기조가 중심인 대남 정책과 관련해서도, 북한이 과거의 대화와 교류 기능을 가진 부서를 모두 폐지하고 관련 역량을 공작 및 정보 수집에 투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군복을 벗는' 북한의 일련의 동향은 외교정책의 변화와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밀착 이후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다극체제' 건설에 나서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러시아·중국 및 관련 우방국과의 정보 교류를 활성화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지난달 31일 '북한 국가정보국 명칭 변경의 함의' 보고서에서 "정보수집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 요원들이 무난하고 튀지 않는 정장을 착용하는 것처럼 북한 국가정보국 요원들이 공식행사에서도 군복을 벗고 검은색 정장을 착용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보편적 일원으로서 규범과 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정상국가'로 보이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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