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北 "때 되면 중국식 개혁·개방"…'고난의 행군' 속 생존에 사활

[외교문서 공개] 개방 유보 이유로 김일성 사망 후 '애도기간' 제시해 눈길
식량난 속 태국에 4~5년 조건 외상수입 타진하기도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이 관광지로 내세우고 있는 삼지연시 스키장의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김예슬 노민호 유민주 임여익 정윤영 기자 = 북한이 1995년 방북한 태국의 무역사절단에 "어느 시기가 되면 중국과 유사한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30년 만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린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한 상황이었으며, 태국에 쌀 등 곡물의 장기 외상수입까지 타진했던 것으로 31일 나타났다.

외교부는 이날 생산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이 해제된 외교문서 2621권(약 37만 쪽)의 주요 내용을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1995년 4월 태국 상무장관을 단장으로 한 태국 무역사절단의 방북 결과를 주중한국대사관이 파악해 본부에 보고한 내용이 포함됐다.

문서에 따르면 태국 무역사절단은 1995년 4월 17일부터 22일까지 방북했다. 이는 한 해 전인 1994년 이뤄진 북한 경제사절단의 태국 방문에 대한 답방이었지만, 정작 태국 측은 당시 북측과 진행 중인 별다른 경제·통상 현안이 없어 방북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우리 외교관을 만난 태국 측 인사에 따르면, 북한은 태국의 사절단에 일용필수품 수입 의사를 밝히면서 대금을 4~5년 뒤 지급하는 조건의 '외상수입'을 요청했다. 특히 주중태국대사관 측은 사절단의 방북 이후에도 북한으로부터 쌀 등 곡물 수입과 관련한 접촉 요청을 수시로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1년 미만의 외상수입만 인정하고, 그 이상은 내각 의결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외상수입이 어렵게 되자 북한은 태국산 상품 수입과 연계해 자국의 자원·원자재를 제공하는 방안도 제시했지만, 태국 측은 북한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협의에 큰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 1995년 방북한 태국의 무역사절단에 "때가 되면 중국과 유사한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30년 만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외교문서 일부, 외교부 제공)

당시 북한 측의 개혁·개방 관련 언급의 진정성은 확인하기 어렵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 측은 태국 측에 "아직 김일성 주석(1994년 사망)의 애도 기간이 끝나지 않아 구체적으로 개방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어느 시기가 되면 중국과 유사한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태국 무역사절단에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당면한 경제난을 면하기 위해 외부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수사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을 붕괴 위기로 몰아넣은 경제난인 '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후반에 가장 악화해 수십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는 북한이 체제의 존립 위기를 겪었던 때로, 실제 당시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先軍政治)를 내세워 고난의 행군 후에도 개혁·개방이 아닌 강력한 폐쇄 정책으로 군사력 강화에만 집중했다.

실제 태국 측은 당시 방북 결과를 토대로 북한 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계속 폐쇄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개방 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관측했다고 한국 측에 전했다. 북측은 사절단에 산업시찰도 주선했지만, 태국 측 사절단은 공장 내부 작업 현장은 보지 못한 채 외관만 둘러봤고, 일부 공장은 가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평가했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