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족' 공감 사라진 사회…30년 만에 새 길 찾는 민간단체 [155마일]
'단체 명칭 변경' 선언한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인터뷰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북한을 왜 돕느냐고 물으면 과거에는 '우리 동포니까'라는 답이 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설명만으로는 부족해졌고, 오히려 '그런데 왜?'라는 질문이 다시 돌아옵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남북 교류협력 활동을 이어온 민간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우리민족)은 1996년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 속에 외부 지원을 요청하던 시기에 창립됐다. 냉전 말기였던 199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 사회에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강했지만, 중후반으로 접어들며 인도적 지원에 대한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하던 시기였다.
이처럼 북한과의 교류가 '이념 문제'에서 '인도적 문제'로 전환되던 흐름 속에서 출범한 '우리민족'에서 30년간 활동해 온 홍상영(60) 사무총장은 지난 25일 뉴스1과 만나 최근 단체명 변경을 검토하며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 사무총장은 "기존의 민족·통일 담론 등 전통적인 접근 방식은 북한뿐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도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며 "시민사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다시 묻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포애'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젊은 세대가 남북 교류의 전성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자신이 6·25전쟁을 체감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2010년 5·24 조치 이후 남북 교류가 사실상 중단된 지 1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 경험이 점차 체감하기 어려운 역사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홍 사무총장은 "시민운동은 시민들의 생각과 의지를 바탕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인데, 지금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통일과 한반도 평화라는 목표는 같지만 이제는 거대 담론보다 개인의 삶과 연결된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우리민족'은 지난 11일부터 27일까지 새로운 단체명을 공개 모집했다. 홍 사무총장은 "이번 공모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민족'은 기존 대북 정책의 중심 기조였던 '접촉을 통한 변화'에서 나아가 '변화를 통한 접촉'이라는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던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담론은 2019년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정세가 급변하면서 한계를 드러냈고, 이후 북한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북한은 핵무기를 국가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내용을 헌법에 반영하며 '핵보유국' 지위를 제도적으로 강화했다. 아울러 경제 분야에서는 도농 격차 해소를 목표로 한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러시아와의 밀착 관계를 통해 확보한 반대급부를 축적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자외교를 강화하며 '위기관리국'이나 '빈곤국'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정상 국가로서의 위상 구축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2023년 말부터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강경하게 유지하고 있는 점도 남북 교류를 제약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다만 홍 사무총장은 남북 교류의 완전한 조건이 갖춰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라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내부의 극명한 인식 차이를 직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봤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와 분리돼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돼야 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와 정부 모두 원칙적으로는 공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북제재와 국내 여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추진이 쉽지 않은 구조라는 설명이다.
그 때문에 인도지원 단체들은 인도주의 원칙과 정치적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구조적 어려움을 지속해서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사회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권당이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정책 방향 차이가 크다 보니 우리 사회에 공감대를 형성할 환경조차 잘 만들어지지 않았잖아요. 추상적인 이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민하는 프로그램, 공론장 등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봐요. 특히 그런 아이디어는 남북 교류 1·2세대 어르신들이 아니라 청년들의 머릿속에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시민단체가 평화 문화를 확산하는 역할과 연대와 협력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일을 동시에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평화가 필요한지, 왜 남북 간 연결이 필요한지, 평화로운 공존과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 설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 사무총장은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낡은 법·제도가 변화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관계와 사회 인식이 크게 달라진 만큼, 30여 년 전 제정된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 등에 대한 추가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남북 교류의 모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북한과 중국 간 '3자 거래 구조'의 고착화를 꼽았다. 2010년 5·24 조치와 2016년 개성공단의 폐쇄 이후 남북 간 교역 경험이 사실상 단절되면서, 관련 제도와 행정 역량이 축적되지 못한 점도 문제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배경으로 지목했다.
"3국 거래 방식은 사실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남북 교류 현장에 가보면 제도적 뒷받침이 안 된다는 게 눈에 보여요. 특히 이 구조는 대북제재와 국내 법제, 국가 간 물류 체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보다 현실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홍 사무총장은 최근 남북 물물 교환의 일환으로 중국 사업자가 개입된 채로 진행된 '들쭉술' 반입 사안을 계기로 이러한 한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같은 시기 강화된 국내 식품 안전 규제와 대북 제재 체계가 맞물리면서, 실제 교류를 추진하려 할 경우 법적 충돌이 발생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식품의 경우 원산지 확인과 현지 실사 요건이 적용되는데, 북한 지역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이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따라 물자는 중국을 경유하고 계약은 '한국-중국', '중국-북한' 둘로 나뉘는 구조인 '3자 거래 구조'를 대안으로 마련해 뒀지만, 근본적으로 식품 규제는 '유통 경로'가 아니라 '제조 원산지'를 기준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 선생, 내 머리에 뿔 있는지 보시렵니까?" 그는 1999년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이런 질문을 들었다. 당시 남한 사회에는 북한 주민의 머리에 뿔이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고, 이를 알고 있던 북한 주민이 장난스럽게 건넨 말이었다. 그만큼 당시 남북 간 인식의 간극과 갈등이 깊었다는 설명이다.
민간 교류는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오해와 갈등 역시 접촉을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남북 단절이 장기화하며 기회는 제한되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한다고 홍 사무총장은 강조했다. 인도적 지원 역시 남과 북의 사람들이 만나는 중요한 통로라는 설명이다.
그는 "남북 문제는 결국 사람의 삶과 연결된 문제"라며 "북한 주민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현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체제와 정치 상황이 달라도 삶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단체는 정부가 하기 어려운 '사람 간 신뢰'를 쌓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 남북 간 민간 차원의 직접 접촉 통로는 사실상 차단된 상태다. 홍 사무총장은 최근 새로운 접촉 채널을 재구축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재외동포와 국내 비영리단체(NGO) 등과 함께하는 다자 협력 방식을 모색 중이다.
아울러 과거 남북 협력의 기록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기록 정리에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평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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