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불면 죽인다' 핵 있는 이란도 친 트럼프에 처지 묘해진 北
마두로 생포 때와는 사안의 함의 크게 달라져
'대화 하자'에서 '대화 안 할래?'로 트럼프 제안 바뀌면 김정은 속내도 복잡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하메네이 정권의 완전 붕괴를 시도하면서 중동 정세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북한의 정세 판단이 상당히 더욱 엄중해질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그저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높이는 단순한 방법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수준의 사태라는 뜻에서다.
베네수엘라와 달리 핵 능력을 보유한 이란을 직접 타격하고, 최고지도자를 '제거'하는 초강경 행보를 보인 미국을 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또 '대화 제의'를 할 경우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평가가 2일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장대한 분노'(Epic Fury)라는 이름의 공습 작전을 단행해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메네이를 비롯해 이란 지도부 40여 명의 사망을 확인한 뒤 "이란 국민이 나라를 되찾을 단 한 번의 위대한 기회"라고 밝히며 '내부로부터의' 정권 교체를 촉구하는 등 이번 공습이 하메네이 정권의 완전 축출임을 시사했다.
핵무기 개발이 막바지 단계에 이른 국가의 최고지도자까지 군사적으로 제거한 것은, 미국이 '실존적인' 핵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가장 최고 단계의 조치도 불사한다는 기조를 보인 사례가 됐다.
이번 사건은 지난 1월 3일 '확고한 결의'(Absolute resolve) 작전으로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생포한 지 약 두 달 만이다. 마두로 체포 작전 당일 백악관은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결연한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FAFO'라는 문구를 게시했다. FAFO는 'FXXX Around, Find Out'의 약자로, '함부로 굴면 대가를 치른다'는 의미로, 트럼프식 외교의 초강경 행보를 예고한 사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마두로 축출 사태 때만 해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를 '직접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핵 등 미국을 위협할 전략무기와 동맹이 없는 마두로 정권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대신 핵 능력 고도화로 미국의 '초강경 군사 작전'을 억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상당한 핵 능력을 축적한 이란의 지도부를 한 번에 '쓸어버리는' 작전이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북한도 마두로 사태 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위협이 '심각하다'거나 '북한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는 판단을 한다면, 이란 사태가 북한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번 작전을 "불법무도한 침략 행위이며 가장 추악한 형태의 주권 침해"라고 규정·비난했다. 이 담화는 이날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도 실렸는데, 북한은 하메네이의 사망 등 이란 지도부의 대거 축출 사실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주민들에게 '독재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숨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북한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적 외교'에 대해 대응해야 하면서도, 미국이 다른 나라의 독재자를 제거한 사실을 내부에 알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체제의 균열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북한은 지난 1월 마두로 축출 사태도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매체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20~21일 진행된 9차 노동당 대회 사업 총화 보고에서 미국에게 '적대시 정책' 철회와 핵보유국 인정을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면서, 미국이 '불량배적' 국가이자 '침략자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북한의 지위가 지난 2018년 북미 정상회담 때와는 달라졌다는 '자신감'에 기인한 것인데, 이러한 김 총비서의 대미 비난 연설 직후 이란 지도부에 대한 미국의 '참수 작전'이 전개되면서 북한의 상황이 묘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란 사태가 북한에 두 가지 상반된 전략적 선택지를 동시에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핵능력을 더 신속하고 확실하게 고도화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대화의 상대로 신뢰하기 어렵고, '핵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는 내부의 판단이 우세해질 경우, 핵·미사일 전력의 실전 배치와 다종화 움직임은 더욱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예상 밖으로 강경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통제하기 위해 이제는 담판에 나서는 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경 일변도의 행보가 트럼프 대통령 및 행정부의 대북 사안 '해법'을 다른 방향으로 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대북 대화 제안이 '대화 하자'에서 '정말 대화를 안 할 것이냐'로 바뀐다면, 북한이 조급해질 만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으론 북한이 자체 핵능력 강화와 러시아·중국과 더 가까워지는 외교를 병행하며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막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 러시아 역시 '트럼프식 외교'에 대항할 수밖에 없는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공동 전선을 강화하기 좋은 여건이라는 분석이다. 동시에 북한은 '우리를 치면 한국이 죽는다'는 상황 논리 강화를 위해 한국을 향한 군사적 공세를 강화할 수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핵 보유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더 강하게 주장하며 증강에 매달릴 가능성이 있는 동시에,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만큼 오히려 대화를 통해 위험을 관리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yoong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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