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식량 해결 일조한 김순권 박사…"최선희, 옛날 제 안내원이었죠"[155마일]
60여차례 방북한 국제옥수수재단 대표 인터뷰
北 고산지대 맞춤형 옥수수 개발…"북송 방법 모색"
- 유민주 기자
(포항=뉴스1) 유민주 기자 = '통일'과 '민족'의 언어는 희미해지고 있지만, 굶주림 앞에서만큼은 여전히 국경이 없다. 1990년대 대기근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북한에 옥수수는 생존의 작물이다.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했던 다수확 종자를 들고 여전히 관계 회복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농학자가 있다.
지난달 22일 경북 포항시 국제옥수수재단 사무실에서 뉴스1과 만난 김순권(82) 박사는 최근 북한의 대표적인 고산지 농업 지역인 대홍단(옛 개마고원) 환경에 적합하도록 개발된 '대홍단 강냉이(옥수수)'를 보여줬다.
계곡이 많은 북한 지형은 잡종 종자 생산에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데, '대홍단 강냉이'는 식량 여건이 특히 어려운 자강도·양강도·함경북도·평안북도 등 고산지 재배 환경에 맞춰 육종됐다.
"지금까지 만든 옥수수는 다 저지대용입니다. 근데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곳은 고산지다 보니 이곳에 적합한 옥수수 종자를 육종했습니다. 아무리 식생활이 바뀐다고 해도 북한에서 옥수수는 여전히 힘없는 사람들의 주식이죠."
김 박사는 농촌진흥청에서 일하면서 고려대 석사 입학시험과 미국 유학 장학생 선발시험에 합격했다. 1972년 미국 하와이대학에 유학을 가서도 3년 3개월 만에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농산물 종자회사 입사 제안을 뒤로 하고 귀국했다.
이후 그는 1976년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생산량이 세 배나 되는 하이브리드 옥수수 '수원 시리즈'를 개발했다. 그로 인해 강원도 매해 농가소득이 400억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당시 하이브리드 옥수수는 영국, 프랑스 등 주로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둔 나라들이 30년 가까이 연구하다가 실패했는데 전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도전을 성공시킨 것이다.
1979년에는 유엔 산하 국제열대농업연구소(IITA)에 스카우트 되면서 아프리카 적응 하이브리드 옥수수, 위축바이러스 저항성 품종 등을 개발했다. 아울러 서구 학자들이 '악마의 풀'이라 부르며 제거하지 못했던 기생잡초 '스트라이가'(Striga)를 해결하는 등 아프리카 식량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
북한과의 인연은 1997년 북한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그가 17년간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면서 1995년 한국에 돌아온 직후다. 아프리카 상당수 국가는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북한은 김 박사의 연구 성과가 식량 증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북한은 1990년대 공산권 붕괴로 비료와 연료 수입이 끊기고 수해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업 생산에 큰 타격을 입었다. 북한은 단순한 식량 부족이 아니라 국가 배급 체계가 붕괴하면서 수십만 명 이상이 굶어 죽은 체제적 기근 상태였다.
6·25를 겪고 반공 교육을 받은 세대인 김 박사는 사실 누구보다 북한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이 무엇인지 어릴 적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서 북한 동포들이 식량이 없어서 굶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또 김 박사의 아내는 북한 함경남도 북청(北靑) 출신으로 당시 대홍수로 농작물이 유실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아직 고향에 남아 있는 언니와 오빠에 대한 걱정이 컸다.
당시에도 남한과 북한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기에 상호 방문이나 교류는 완전히 막혀 있는 상태였다. 김 박사는 정부와 국가정보원(구 안기부) 수락으로 1998년 북한에 처음으로 방문했고 그때부터 식량난 해결을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다만 남측 연구원에 대한 신뢰는 초반에 매우 부족했다.
김순권 박사는 당시 북한의 옥수수 심기를 반으로 줄이고 대신 콩을 심을 것으로 조언했는데, 이를 듣고 북측 연구원들은 김 박사를 의심했다고 한다.
"처음에 북측에서 오해했습니다. 국정원에서 시켜서 우리를 더 굶어 죽게 하기 위해서 콩을 심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요. '수원 19호'를 80개 협동농장에 심었어요. 3000종의 옥수수를 만들어서 남과 북이 공동 연구한 겁니다. 6·25 사변 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이 기술협력을 한 겁니다. 그것도 협약에 의해서, 북쪽의 요구에 의해서요."
김 박사는 콩의 영양 가치가 옥수수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기에 제안한 것이었다. 또 옥수수는 연작(이어짓기)하면 병해가 심해질 수 있을뿐더러 거름이 많이 필요하기에 다른 작물로 돌려짓거나 휴경이 권고되는 작물이지만, 북한은 질보다 양을 중시했기에 그동안 같은 땅에 옥수수를 여러 번 심어왔다.
김 박사는 북한에 재래종보다 알곡이 두 배 이상 나오고 병충해와 바람에도 강한 '수원 19호'를 보급했다. 1998년 북한 10여 개 지역 80개 마을에서 시험 재배한 결과 기존 종자보다 20% 이상 생산량이 늘었다고 한다. 수원 19호의 성공은 더 나은 옥수수 품종 개발의 계기가 됐고 김 박사는 북한의 과학자들과 공동 연구로 북한 각 지역에 맞는 12종의 옥수수 품종을 개발했다.
"북한 보위부 관리들은 원종의 가치를 잘 알고 있어요. 잡종을 만들 때 결국 원종으로 교배해야 해요. 북한은 홍수가 나고 하면서 고산지 원종이 많이 떠내려갔고, 중국은 북한을 도와주는 것 같았지만 결국 원종을 주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원종을 가져다주니까 굉장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죠. 북한 과학자를 중국에서 초청했는데, 밤에 옥수수 농장에서 종자를 훔치다가 붙잡히고는 경계가 삼엄했어요."
북한은 당시 김순권 박사에게 안내원을 붙여 감시하고 소통했는데, 김 박사는 가장 까다롭게 군 안내원을 지금은 외무상으로 활약하고 있는 최선희로 기억했다.
김 박사는 "아주 직설적이고 아주 똑똑하고 예민한 사람"이라며 "고려호텔에 데려다주면서 막 시비를 걸기도 했는데 나중 돼서는 나한테 사과도 하고 그랬다"고 말했다. 초반에 김 박사를 전담했던 권오흥(전 남북정상급회담 북측대표단 단장인 내각 책임참사)씨가 나오지 못한 날에는 서로 돌아가면서 안내를 하던 사람 중에 최선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새로 개발한 '대홍단 강냉이'는 북한 현지에서 직접 개발해 낸 것은 아니지만 이는 그가 과거 북한에서 연구를 지속할 당시에 확보해 둔 종자가 있어 가능했다. 그는 1999년 평양 용성리 농업과학원에서 수집한 대홍단 강냉이(옥수수) 유전 자원을 기반으로 연구를 지속해 왔다.
또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몽골,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 협업을 이어온 배경 덕분이기도 하다. 남북 관계 경색으로 북한에 들어갈 순 없지만 기후나 토양이 비슷한 중국 단둥 등 접경지역이나 비슷한 위도·경도에서 대신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2004년 몽골·러시아·미국·캐나다 등 재래 옥수수와 교배로 몽골 환경에서 재배할 수 있는 'MCP(Mongolian Corn Population)' 육종하고, 2008년부터 중국 동북 3성에 닥터콘유한회사를 설립해 북한 적응 옥수수 개발을 이어왔다.
연구 과정에서 MCP와 포항에서 개발한 검정 옥수수를 교배하던 중 뛰어난 잡종강세(heterosis)를 확인해 새 품종이 탄생했다. '대홍단 블랙콘'은 이삭 속심이 단단하고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안토시아닌은 항산화 작용으로 알려진 성분으로, 김 박사는 "현재 김정은 당 총비서의 신체 상태를 보면 당뇨가 언젠가 올 수도 있는데, 이 옥수수가 당뇨 예방에도 좋다"고 부연했다.
2015년에는 러시아 부랴트 공화국으로 친환경 옥수수 육종 개발을 확대했다. 부랴트 공화국에서의 옥수수 육종은 겨울철 가축들의 사료 문제 해결과 러시아 독립국들 남단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농가 소득 증대에도 도움이 됐다.
"러시아도 강냉이 농사를 잘 못해요. 원래부터 미국이 러시아에 옥수수를 못 들어가게 막기도 하고 거의 사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제가 지역에 맞게 종자 개발하는 게 전공이니까, 러시아 연해주도 그렇고 중국도 가서 그 지역에 알맞은 키트를 만들어주고, 옥수수를 통해 북한에 옥수수를 전달할 방법을 찾아 온 겁니다. 통일하려면 중국, 미국, 러시아랑도 잘 지내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들이 반대하면 통일되기가 어렵습니다."
2019년에는 북한 및 중국 동북 3성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개발된 550종의 새로운 옥수수를 북한 은산 강냉이연구소와 평양 미림농업시험장에서 육종했다. 국제옥수수재단과 한동대학교 통일농장에서는 550종에 이어 미국 농무부(USDA)에서 분양받은 739종의 옥수수 종자를 증식하고 있다.
그의 연구소에서 육종된 옥수수들은 언젠가 북한으로 들어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6일에도 그는 주중북한대사관을 통해 '대홍단 강냉이' 전달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옥수수 파종 시기인 5월까지 김 박사는 이 옥수수들을 그동안 쌓아온 인맥을 동원해 제3국을 통한 전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 종자 창고에 북한에 줄 종자가 2톤 가까이 됩니다. 일부 국민들은 반대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북한이 이제라도 딴눈 팔지 않도록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북한과 거래에서는 신뢰가 중요합니다. 무조건 돕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반대급부가 필요할 때 필요한 것으로 거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옥수수를 키우기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옥수수를 통해서 우리 민족이 통일됐으면 좋겠습니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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