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터닝포인트] 남북, 정말 '두 국가'로 갈라설 수 있을까?
새로운 한반도 평화 구축 담론
변화하고 있는 남북의 민족공동체 인식
- 최소망 기자, 김예슬 기자, 유민주 기자,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김예슬 유민주 임여익 기자 =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지니고 있는 남북은 오랜 시간 서로를 '민족공동체', 즉 '한민족'이라고 여겨왔다. 서로를 다른 국가가 아닌, 분단된 일부로 언젠가는 함께해야 할 상대라는 인식을 정책에 반영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 인식이 변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남한을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로 규정하고 더 이상 서로가 민족으로서 함께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한에서도 정부를 중심으로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담론이 제기되고 있다.
남북이 국제무대에선 이미 두 국가처럼 활동해 온 것은 사실이다. 1991년 9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각 유엔에 가입하게 되면서, 남북이 각각 국제적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91년 12월에 채택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의 서문에는 "남북은 특수관계"라고 명시됐다. 서로 다른 국가이지만 특수한 관계라는, 개념의 충돌 지점이 이때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남북관계는 '한 국가, 한 민족'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규정하고 있다.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국가의 목표로 명시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통일 지향'을 일관된 국가 정체성으로 유지해 왔음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정부가 추진한 대북·안보 정책은 헌법이 정한 가치는 지키고 있다. 하지만 방법론에서는 정권의 성향과 정세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접근법을 구사했다. 진보 성향의 정권은 북한을 '대화·협력의 대상'으로 인식하며, 한반도 긴장 완화를 대북 정책의 핵심 가치로 두곤 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은 2000년 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로 이어지며 남북 간 대화와 '평화의 시대'의 상징이 됐다.
노무현 정부는 개성공단을 본격 가동하며 정치적 갈등과 경제 협력을 분리한다는 기조를 원칙으로 내세웠고,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위기를 거치고도 남북 정상회담을 이뤄내며 또 하나의 남북관계 모델을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는 초유의 핵전쟁 위기 국면을 대화로 바꾸며 극적인 남북관계를 보여줬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남북이 접경지대 무장을 사실상 전면적으로 해제하고 상당수의 군사 활동을 중지하는 '9·19 군사합의'를 도출해 냈다.
보수 성향의 정부는 비핵화와 인권 문제 해결이라는,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남북관계의 대전제로 삼았다. 김영삼 정부는 북핵 위기 당시 '한반도에 핵은 없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강한 한미 공조로 북한을 압박했다.
이명박 정부도 북한의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제시한 '비핵·개방·3000' 구상을 내세워 무조건적 대화와 지원이 남북관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어젠다를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의 문도 열려 있다는 '강온 병행 전략'을 구사했다.
이같은 역대 정부의 성향 및 정책의 차이는 한국의 정권 교체 때마다 남북관계의 나침반도 강제 조정되는 결과로 귀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부는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정책의 기본 골격으로 삼았다고 밝혀 왔다. 이는 한국에서는 통일이라는 가치가 정책 이행의 효용성과 국민적 지지 확보를 위한 최대의 가치임을 방증한다.
동시에 고도화한 북핵에 대한 대응을 위한 대부분의 활동은 유엔을 주 무대로 삼는 외교를 통해 이행됐다. 대북 유화책이든, 강경책이든 남북관계는 특수한 관계라는 개념을 흔든 정부는 없었다. 북한을 상대하는 데 있어 남북이 '두 국가'여서 가능한 국제사회의 논리와 공식을 깬 정부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와 달리 공식적으로 '남북 두 국가'를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다만 남북이 두 국가가 되는 것이 정책의 목표는 아니다. 이미 두 국가가 된 남북의 현실을 부각해 사회적 인식과 정책의 괴리 혹은 오류를 바로잡는 데에서 발전적 남북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통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분명 바뀌고 있다. 지난해 통일연구원이 진행한 통일인식 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51%를 기록했다. 지난 2014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자 비율(49%)을 역전했다.
학계에서도 남북 간 교류·접촉이 대부분 중단된 현 상황에서 통일을 정책 목표로 삼는 접근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시에 두 국가로서의 남북을 인정하는 것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는 결과가 된다거나, 영구 분단을 고착해 헌법의 가치를 손상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 그간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국제무대에서 각자의 위상을 가진 남북관계를 잘 섞어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이를 통해 미국을 남북관계에 끌어들이며 비핵화 협상을 펼치는 등 남북관계를 주도하는 듯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북 두 국가' 논쟁이 북한의 주장으로 시작되고,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새로운 담론을 추동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남북관계의 양상도 달라지는 모양새다. 정부 주도의 전략적 남북관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북한은 지난 2023년 연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이후 한국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2023년 12월 30일 열린 당 전원회의 회의에서 "북남(남북) 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두 선대 지도자의 시대 때 일관하게 유지했던 통일 정책을 폐기한 것이다. 아버지(김정일)와 할아버지(김일성)의 통치 방식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인 북한의 통치 방식에선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의 파격적 정책인 셈이다.
이 새로운 대남 정책은 미국에게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고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북한의 요구와 거의 동시에 나왔다. 북한의 대외 정책이 본질적으로 체제 유지라는 '생존'에 초점이 맞춰졌음을 감안하면, 북한의 행보는 생존을 위한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볼 측면도 있다.
북한의 두 국가 정책이 과거의 다른 대남 정책과 비교해도 추진 속도가 빠르고 그 결과가 가시적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 2024년 1월 김 총비서는 "우리 공화국의 민족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라며 이를 헌법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남북 당국 및 민간 교류를 전담해 온 대남 대화·교류·협력 조직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남북을 연결하는 경의선·동해선 일부 구간을 폭파하며 물리적인 단절 조치까지 취했다. 남북 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금강산관광지구가 북한의 손으로 재개발되고 있다.
2025년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남북 긴장 완화와 대화를 위해 '속도전식' 대북 유화책을 펼쳤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새 정책을 관철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대남 정책이 상대방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일시적 기조 변화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북한의 새로운 생존 전략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밀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손을 잡으며 외교적으로는 도박에 가까운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대립에 대응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풀리지 않는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적 고립도 북한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변수'가 곧 상수인 외교에서 북한의 행보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의 행보를 생존 전략으로 보는 관점에서 여전히 북한에게 가장 큰 이득, 즉 체제 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줄 상대방은 여전히 미국이다. 그 때문에 북미의 외교는 휴화산 상태라는 평가는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이 직접 관여보다 선(先) 북미 대화라는 '상황 조성'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이러한 상황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당장 '두 국가' 문제를 남북 당국이 마주앉아 논의할 여건이 마련될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생존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이행하는 체제가 당장의 실익과 거리가 있는 외교를 할 의향이 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다.
2026년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간 평가를 받는 상·하원 선거(중간선거)가 예정돼 있다. 11월로 예정된 선거 승리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총력전이 예상된다. 전 세계 각국의 분쟁 해결을 성과로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관심도 중간선거가 다가올수록 더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가장 큰 시기를 '주도적 대외 환경 변화'의 적기로 볼 공산이 크다. 중간선거 전 미국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북한이 구상하는 전략적 대외 환경의 완성 혹은 안정적 유지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한국도 비슷한 입장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유도하는데 실패한다면, 북미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푼다는 정부의 구상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희망적 관측도 있다. 중간선거 전 북미 대화를 끌어낼 수 있다면 선거 이후 4년 임기 후반에 들어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영향력을 3년의 임기를 남긴 이재명 정부가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과거의 남북관계로 돌아가느냐, 두 국가인 남북의 발전적 관계를 새로 시작하느냐도 미국의 중간선거와 관련한 한반도 정세 변화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9차 노동당 대회도 새 한반도 정세, 남북관계를 예상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당 대회를 통해 5년 단위의 새 국가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에 9차 당 대회에서 결정될 외교·경제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북한의 향후 행보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전면 교착'이 '제한적 변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북미 대화를 통한 '전면적 변화'로 귀결될지를 당 대회 결과를 통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위 내용은 뉴욕타임스(NYT)가 발간하는 새해 전망서 '터닝 포인트 어젠다 2026(이하 '터닝 포인트')'에 수록된 '남북, 정말 '두 국가'로 갈라설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다. 다채로운 콘텐츠로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혜안을 제공하는 '터닝 포인트'는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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