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남북관계 전망 [정창현의 북한읽기]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새해에는 꽉 막힌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열릴까?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은 새해에도 '변화가 없거나 더 나빠질 것'이라고 봤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실시한 2025년 4분기 국민 통일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4%는 2026년 남북관계 전망과 관련해 '변화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나빠질 것'이란 응답도 13.6%에 달했다. 남북관계가 '올해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34.3%에 그쳤다.
통일연구원·국립외교원·국가안보전략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들도 대체로 "남북 대화 재개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내년에도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기조에 기반한 대남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상황 인식 자체는 정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어떻게든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통일부의 2026년도 업무보고 때 "남북이 소통하고 대화하고 협력하고 공존·공영의 길을 가야 하는데 지금은 바늘구멍 하나도 여지가 없다"라며 "선제적으로 주도적으로 남북의 적대가 완화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통일부도 "내년을 한반도 평화 공존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역량을 총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내년 4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때 한국과 중국이 중개자, 촉진자 역할을 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길 기대하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정상이 만난다면 남북 대화와 남북 교류의 공간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돼 북미 대화가 시작될 경우 북한이 요구하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중지 등은 미국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어 한국과 합의가 필수적이고,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남북 대화를 권유한다면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와 접촉을 전면 거부했던 입장을 재고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내부 동향을 보면 이러한 기대감이 너무 낙관적이란 느낌을 준다. 북미 정상회담이 불확실하고, 설사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더라도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23년 말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후 과거 남북 대화와 교류를 담당했던 대남기구를 모두 해체했다. 당 통일전선부는 '당 중앙위원회 10국'으로 격하되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통일부나 민간 단체의 대북 교류 창구가 사라진 셈이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 지뢰를 매설하고 철책선을 설치하는 등 '국경선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 남한이 군사분계선(MDL)에 설치한 대전차 방벽(콘크리트 장벽)을 '영구 분열의 상징'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태도다. 북한은 내년에 이 작업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유보하고 현재의 군사분계선을 남한(남조선)과 북한(북조선)이 아닌 '조선과 대한민국' 두 나라의 국경선으로 고착하려는 의도다.
실제로 북한이 새로 발간한 관광안내서나 지도에도 군사분계선 이남을 '한국'이라고 표기하며 과거와 달리 한국 내 행정구역이나 지명은 모두 삭제했다. 일부 관광안내서에는 아예 한(조선)반도 대신 북한 지역만 지도로 그려놓았다. 이러한 동향은 북한이 남·북·미 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이 가까운 시일에 이뤄질 가능성을 아주 작게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북한이 '분단사' 자체를 부인하고 '조선'의 독자적인 독립국가 수립과 발전 과정으로 역사상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분단 체제에서의 북한이 아닌 독립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서의 국가 정체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역사관을 구축하고 있다.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선은 하나의 완전한 독립 국가"이고 "통일은 더 이상 시대적 과제가 아니다"란 교양을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 '조선'은 탄생부터 분단국가가 아닌 독립 국가였다는 역사관으로 분단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셈이다.
즉 조선은 1930~40년대에 소련·중국 공산당과 함께 '반파쇼인민전선'에 참여했고, 그 결실로 1945년 해방과 1948년 독립 국가 건설을 이뤘으며,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사회주의 건설과 수호를 이뤄냈고,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신냉전 체계 전환과 다국화 흐름이 뚜렷한 국제 환경에서 중국, 러시아와 반제연대의 한 축을 형성하며 전면적 사회주의 발전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이라는 '혁명전'을 기반으로 탄생하고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온 '조선'과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자본주의의 길을 선택한 '한국'은 출발 자체가 달랐고, 이제는 동족 관계로 보기도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는 인식이다. 지난 80년 남북 분단사에 대한 부정이자 통일의 당위성을 배제하는 논리다.
이러한 역사 인식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통일돼야 한다는 '북남관계'는 사라지고, 각각이 독립국가인 '조선과 한국 관계'의 두 국가 틀 속에서 '적대적 국가' 대한민국만이 존재하게 된다. 남북 간 대화와 교류보다 안보와 경쟁이라는 개념이 전면에 등장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전혀 다른 역사관의 정립과 교양은 남북관계사를 총화(결산)한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신세대의 등장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의 당과 내각의 중간 간부층은 30~40대로 구성되어 있고, 주요 기업소 지배인이나 무역회사 사장 중에는 30대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이 한국과의 교류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평양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복수의 해외인사들은 "사업관계로 오랜만에 평양에 가보니 과거에 인연이 있는 사람이 거의 사라지고 30~40대의 젊은 층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들과 대화를 해보니 한국과의 교류나 경협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고 위험부담도 많은 남북 교류보다는 과거 사회주의 경험이 있고 정치적 부담도 적은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과의 교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북한 간부층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북한의 내부 동향과 인식 변화의 흐름을 볼 때 내년에 개최될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해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언급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비핵화'보다는 북미관계 정상화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한국이나 중국이 중재자로 개입할 여지는 제한적이다. 지난 2년간 내부적으로 '민족'과 '통일' 지우기 작업을 해온 북한이 이를 다시 뒤집고 남북 대화와 교류에 나서는 '대전환'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통일부가 남북관계에 '바늘구멍'이라도 뚫기 위해 서울~베이징 고속철도 구상, 국제 원산갈마평화관광 추진, 신(新) 평화 교역시스템 구축 등 여러 방안을 내놓았지만, 대북제재 속에서 실현 가능성이 작고 북한의 호응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내년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운 정세라면 차선책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화와 교류가 없는 남북관계에 대한 장기적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통일 이전 단계의 안정적 공존'을 공식 정책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잠정적으로 '적대적 두 국가'에서 '평화적 두 국가' 관계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전환은 남북 간 대화와 교류도 필요하지만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유인하는 '대북정책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전제로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될 수 있는 대북정책을 대중적으로 확고히 하고, 상황별 중장기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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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