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 청탁하는 서울"…여전히 한미에 부정적인 김정은

핵잠 시찰하며 한미 '주종관계'로 규정
내년 9차 당 대회 때 '유의미한 태도 변화' 어려울 듯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이 8700톤급 핵잠수함을 건조 중이라며 함체 전체의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한국의 핵잠 도입사업에 대해 "서울이 워싱턴에 청탁해 합의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한미를 적대적으로 보는 시각에 변화가 없음을 드러냈다. 북한이 내년 초에 열리는 9차 노동당 대회와,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한미와의 대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북한의 변화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는 최고지도자의 발언이 나온 것이다.

25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최근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핵잠수함) 건조사업을 현지지도하며 한국의 핵잠 도입 추진이 "서울의 청탁으로 워싱턴과 합의된" 사안이라고 표현했다.

한미 간 협의를 위계적 구조로 묘사한 것으로, 북한이 한미동맹을 동등한 협력 관계가 아닌 종속적 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다시 드러낸 셈이다. 북한이 오랜 기간 한미관계를 '주종관계'라고 주장한 인식에 변화가 없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김 총비서는 이어 한국의 핵잠 도입 움직임을 자신들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규정하며 "반드시 대응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대적 견제 원칙'에는 추호의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한미를 향한 '대적 투쟁' 노선을 지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남북·북미관계에서 국면 전환 가능성을 열어두기보다는, 오히려 대응 논리를 강화하며 긴장의 책임을 한미에 돌리는 기조가 여전한 셈이다.

이같은 인식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된 국방성 대변인 담화에서도 반복됐다. 북한은 미국 핵잠수함 '그린빌함'의 지난 23일 부산기지 입항과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문제 삼으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한미 연합훈련과 미 전략자산의 전개 중단이 북미·남북 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당장은 한미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군사적 위협을 지속한다는 입장에 더 무게가 실린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언이 군사적 경고를 넘어, 한미 주도의 협상 구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정치적 메시지라고 보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핵전쟁억제력과 핵무력 구성 지속 의지를 강조한 것은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의도"라며 "최근 한미가 북미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의식해, 협상이 비핵화 국면으로 전환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총비서는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에게는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밝히고, 한국을 향해서는 "마주 앉을 이유가 없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후 이달 중순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선 대외 메시지를 내지 않으면서 북한이 새해를 앞두고 나름의 '심사숙고'를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날 공개된 김 총비서의 발언으로 봤을 때는 북한의 대미, 대남 인식에는 아직 변화가 없어 보인다.

특히 김 총비서의 발언은 '핵잠 대 핵잠' 구도를 전면에 내세우며 안보 딜레마를 한층 가속화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과 한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위협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북한의 핵잠수함 개발과 핵무력 강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강화하면서 군비 경쟁의 악순환을 구조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북미 대화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신뢰 회복의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나온 메시지로 봤을 때 내년 초로 예상되는 노동당 제9차 대회를 앞두고도 북한의 대미·대남 노선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새해를 계기로 대화 국면 전환을 기대해 온 한미의 구상과 달리, 북한은 기존 대결 구도를 유지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관측이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