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통해 본 北 경제…평양 너머를 기록한 연구자의 시선 [155마일]
북한 경제·IT 연구자 설송아 작가 인터뷰
보건 인프라 마련에 '무상 치료제' 제운 北…'대북제재' 해제 구상 엿보여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평양, 남포, 함흥, 청진, 원산...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행정구역은 우리에게 낯설다. 북한에서 가장 발달한 수도 평양의 모습은 그나마 선전용 사진을 통해 자주 볼 수 있는 편이지만, 다른 지역은 볼 기회가 흔치 않다. 평양만 봐서는 북한을 알 수 없기에 북한의 중소규모 지방 도시를 주목한 작가가 있다.
지난 14일 뉴스1과 만난 북한 경제·IT 연구자이자 탈북 작가인 설송아(본명 최설·56)씨는 지난 9월 '생산도시 순천'을 출간하며 중앙이 아닌 지방의 관점에서 바라본 북한 경제를 소개했다. 이념, 인권 등의 편중된 시선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생활이 그대로 녹아 있는 지방 그대로의 북한을 드러내고자 했다.
작가는 평안남도 순천을 조명했다. 순천은 자신의 고향이자 한국전쟁 이후 북한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중화학공업 도시로 발전한 도시다.
"북한 경제 내구력을 이해하려면 자력갱생 도시를 상징하고 있는 순천을 봐야 합니다. 순천은 자력갱생 도시를 상징하는 북한의 지방 도시 중 하나로 볼 수 있어요. 이 책은 경제서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의 역동적인 삶의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개인이 돼지를 사육하는 과정이 왜 밀주산업을 불러왔는지, 이로써 파생되는 종축 등 사례들이 시장 경제로 발전되는 과정을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나눠서 기록했습니다."
북한은 '중공업 우선 발전 경제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해당 지역의 대규모 기업은 중앙공업으로, 중소 규모 기업은 지방공업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중앙공업은 내각이, 지방공업은 시·군 인민위원회가 관리하는 체계로 지방경제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하게 되자 북한 정부는 기업의 자력갱생을 촉구했는데, 이는 중앙공업과 지방공업의 시장화로 이어지며 '신지역경제'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설송아 씨의 논문과 보고서는 북한 학계에서 나름대로 '살아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의 현실을 취재해 연구에 반영한 동시에 데이터의 정확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아직 고향에 남아있는 가족과 지인들의 연락을 통해 일차적으로 시장환율, 시장 물가 등 새로운 정보를 취합한다고 한다. 한국과 연결된 비공식 송금 네트워크로 돈을 보내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부터 트렌드까지 파악한다.
택시비가 얼마고, 아파트 중에서도 역세권 아파트는 얼마나 가격이 올라갔는지, 순천구두공장에서 생산한 신발이 야매(시장가격)로 판매되는 장소가 국영상점이라는 '산업 정보'를 수집한다. 내부 동향 조사를 시작으로 중국 세관에서 발표하는 수출입 품목 등의 공식 통계 자료를 활용해 크로스체크를 진행한다.
여기에 추가로 통일연구원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국책기관이 발표하는 보고서를 참고한다. 이 보고서들은 인공위성 영상 데이터를 활용해 북한의 경제지표를 더 객관적인 방법으로 입증하는데, 앞서 설송아 씨가 직접 취재한 내용과 확인한 통계들은 이 자료들과 거듭 교차 확인하며 자신만의 보고서를 정리한다.
작가는 북한의 경제 구조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사례로 최근 북한 매체가 선전한 농업 분야 애플리케이션(앱) '황금열매'의 가입자 수 증가를 들었다. 지난 12일 북한 주민들도 볼 수 있는 매체인 노동신문은 "농업과학기술봉사프로그램 '황금열매' 가입자 수가 올해 지난해 대비 1.6배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황금열매'는 사용자들이 이동통신망을 이용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실시간으로 농업과학기술 자료를 열람하고, 농사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답변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신문은 현재까지 문답 봉사(서비스)의 이용 건수가 1만여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가가 직접 정보 서비스 시장을 만들어서 정보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것인데, 황금열매 프로그램은 유료 앱입니다. 노동신문에는 선전되지 않지만, 정보들 하나하나가 건당 북한 돈으로 2000~3000원(한화 약 73~118원)로 알려져 있어요. 과거에는 세 부담을 과하게 부과해서 민심 이반이 이뤄졌다면 지금은 핸드폰을 통해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와 소액 결제를 유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설 작가는 현재 북한에서 쌀 1kg이 북한 화폐로 3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문서 한 개에 2000~3000원은 일반 노동자가 부담되지 않는 금액대라고 설명했다. 2023년부터 북한은 전국에 양곡판매소를 설치하고 곡물 시장을 제도권 내로 흡수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 기존의 월급이 25배 인상되었고 평균 노동자의 월급은 5만원, 교사나 의사 등 전문직은 10만~20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물론 물가 폭등 등 부작용도 있었다.
설 작가는 현재 북한이 지방에 추진 중인 병원 신설 사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 당국이 얼마나 북미회담을 면밀히 준비하고 있는지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023년 12월 말 김정은은 전원회의에서 보건 인프라 강화를 위한 새로운 지침을 제시했다. 이 결정은 2022년 5월 김정은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처음 발표한 후, 평양 약국의 의약품 실태를 지적하며 지역별 '표준약국' 건설을 지시한 데서 비롯됐다고 설 작가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평양을 포함한 자강도, 황해남도 등 지역에서 '표준약국'이 완공돼 2024년 상반기부터 24시간 운영되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이 표준약국의 의약품들이 일반 시장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지방정부 명의로 개인이 운영해 왔던 약국 유료화가 정책적으로 일반화된 것은 북한 보건 시스템의 전환점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암시장에서 공급되던 약을 제도권으로 들여온 게 '표준약국'입니다. 근데 이걸 지방의 보건 인프라로 발전시키면서 '무상 치료 제도의 우월성' 등에 대한 선전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기존의 사회주의 무상치료제를 없애겠다는 조짐이죠. 이런 전략은 '황금열매'와도 상통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의료설비 등을 수입해야 하는데 결국 대북제재 해제가 핵심 과제가 됩니다."
설 작가는 결국 김정은 정권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현재의 통치 체제가 위협받지 않을 정도의 경제 개혁을 하려면 '대북제재' 중단을 이루는 것이 정책의 초점이자 궁극적인 목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표준약국' 유료화가 시작은 되었지만 보건시설 현대화, 지방공업공장 가동 정상화를 위해 재원이 제대로 조달되려면 대북제제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무력 도발과 핵 개발, 사이버 활동,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생겨났다.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을 이유로 북한의 핵 화산과 관련된 개인·기관을 제재하고 무기 판매, 달러 위조 등의 불법 행위를 차단하는 '금융 제재'를 도입했다.
또 2010년대에는 북한의 모든 기관·무역·운송에 법률 기반을 추가하며 사실상 북한 관련 해외은행에도 제재를 적용하는 등 강력한 압박 체제를 구축했다. 이와 더불어 나라별 독자 제재도 각국의 외교정책과 안보 이익에 따라 형성돼 북한의 '돈줄'을 막아왔다.
설 작가는 남북 협력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농촌 단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가장 대중화되어 있는 산업으로 '돼지 축산'을 뽑으며 남북 교류에 있어서 그나마 접근성이 쉬운 구상이라고 봤다.
남북 소통 창구가 막혀 있는 현시점에서는 민간 교류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지역 주민들로부터 먼저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돼지 축산은) 초기 투자 비용도 낮고 실제 효과는 빠르고 북한 주민들의 수용성도 높습니다. 돼지를 길러서 팔면 소득이 올라가고 분변으로 유기농 비료도 생산하고, 작은 규모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현실성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해요. 북한의 지역 경제 구조는 도시의 변두리에 농촌을 설치해 뒀기 때문에 농축산에서 소득 창출이 먼저 생기면 도시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남북 협력이 별것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산업'이 되는 거잖아요."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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