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 여전히 악의적"…트럼프 손짓에도 미국과 거리두기 지속
美 독자 대북제재에 "아무 영향 없다, 미국의 본색만 확인"
내년 9차 당 대회까지는 美와 엮이지 않는 노선 고수 예상
- 최소망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독자제재 조치에 6일 "악의적 본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의가 '속임수'라는 취지의 주장으로, 당장은 미국과 대화에 나설 상황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내면서 거리를 두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김은철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우리 국가에 끝까지 적대적이려는 미국의 속내를 다시금 확인한 데 맞게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이번 제재는 미국의 대조선(북) 정책 변화를 점치던 세간의 추측과 여론에 종지부를 찍은 계기가 됐다"라고 주장했다.
김 부상은 "이로써 미 행정부는 우리 국가를 끝까지 적대시하겠다는 입장을 유감없이 보여 준 것"이라며 "미국의 상습적인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재확인했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지난 4일(현지시간) 북한 정권의 사이버 범죄 및 정보기술(IT) 노동자 사기 수익자금 세탁에 관여한 북한 국적자 8명과 북한 소재 기관 2곳을 제재 대상으로 신규 지정했다.
이번 제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하면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의 만남을 추진했으나 불발된 뒤에 나온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압박을 높이면서 협상 카드를 쌓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우리에게는 제재가 있다. 이는 꽤 큰 사안이다. 아마 이보다 더 큰 건 없을 것"이라며 제재 완화 혹은 해제 문제를 북한과의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김 부상의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 부상은 "미국은 압박과 회유, 위협과 공갈로 충만한 자기의 고유한 거래 방식이 우리 국가를 상대로 언젠가 결실을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미련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라며 "미국의 제재는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우리의 대미 사고와 관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재는 더 이상 협상의 카드가 아니라는 취지의 입장을 부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부상은 그러면서 "실패한 과거의 낡은 각본을 답습하면서 새로운 결과를 기대하는 것처럼 우매한 짓은 없다"라고도 덧붙여 7년 전처럼 비핵화와 제재 문제를 맞바꾸는 방식의 협상을 반복하기 위한 대화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은 지난 1일엔 '비핵화'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이에 대해서도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박명호 외무성 부상이 정부가 APEC 계기 한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논의한다고 밝힌 것을 "개꿈"이라고 맹비난한 것이다. 박 부상은 "우리의 핵보유국적 지위를 애써 부정하고 아직도 비핵화를 실현시켜보겠다는 망상을 입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몰상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는 꼴"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하면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북한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 '핵보유국 인정, 비핵화 정책 폐기'에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연설은 곧 북한 당국의 지침이 된다는 점에서, 이날 김 부상의 담화도 '옛날 방식'을 반복하려는 한미의 최근 행보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해 변화를 촉구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제재만으로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라면서 "북한은 미국이 제재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이 2018년식 비핵화 협상을 반복하려는 의도로 보는 듯하다. 이제는 과거 방식 말고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온전히 인정하라는, 미국도 완전히 달라진 입장을 보이라는 요구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북한의 기조는 미국과 일단 거리를 두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초에 열릴 9차 당 대회에서 5년짜리 새 국정 기조를 수립해야 하는 북한은 일단은 내치에 집중한 뒤 미국과의 접촉 여부를 모색한다는 구상을 세운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북한은 최근 두 번의 담화 모두 외무성 부상(차관급) 명의로 내고, 대미 외교의 전략을 설계하는 최선희 외무상이나 대외총괄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 고위 인사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않고 있는데, 이는 향후 북미 정상의 대화를 염두에 둔 톤 조절 의도로 보인다.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9월 연설에서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라고 밝힌 것은, 북미 정상의 대화는 오로지 최고지도자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임을 보여 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somangcho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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