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떠난 날 김정은 민생 행보의 함의…북미, 해 넘겨야 접점 찾는다

북미 대화보단 내부 챙기기에 집중한 모습 연출…당 대회까진 정중동
트럼프 "김정은 만나기 위해 돌아오겠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1일 "김정은 동지께서 10월 30일 완공단계에 이른 강동군병원을 돌아보셨다"라고 보도했다. 조용원 당 비서가 이번 시찰에 동행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이은 러브콜에도 호응하지 않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떠나는 날 민생 챙기기 행보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미 간 만남에 조급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는 해석이 31일 제기된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 총비서가 완공 단계에 이른 강동군 병원을 점검했다고 보도했다. 점검 일자는 전날인 30일이라고 신문은 명시했다.

김 총비서가 병원을 찾은 날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를 떠나 귀국하는 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차 지난 29일 방한해 한미 정상회담, 미중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전날 출국했다.

강동군 병원은 김 총비서가 지난해부터 경제 부문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지방발전 20 X 10' 사업의 일환이다. 이 사업은 평양이 아닌 지방에 거점 공장과 병원 등을 짓는 경제·민생 인프라 확장 및 현대화 사업이다. 북한은 올해 2월부터 용강군·구성시 병원과 함께 총 3곳에 지방병원을 시범 건설 중이며, 내년부터 해마다 20개의 시·군 병원을 짓겠다는 구상이다.

이날 신문은 강동군 병원이 착공한 지 약 8개월 만에 '완공 단계'에 이르렀다며 외관과 지하 주차장·입원실·수술실·의사실 등 내부 시설을 공개했다. 김 총비서가 보건의료 인프라·인력 부족 해소를 강조하며 '인민 생활 향상' 기조를 직접 챙기고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오찬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김 총비서가 트럼프 대통령의 귀국 당일 병원 건설사업을 점검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 미국과의 만남에 애초에 관심이 없었음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22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하루 전에도 순항미사일 발사 도발을 단행하는 등 대화와 거리가 있는 동향을 보인 바 있다. 대미 외교를 책임지는 최선희 외무상도 26일 러시아로 떠나 벨라루스까지 방문한 뒤 30일에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 총비서의 관심사는 연말과 내년 초에 예정된 내부 행사에 쏠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올해 12월에 한 해를 총화(결산)하는 노동당 전원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며, 내년 초엔 5년 만에 제9차 당 대회를 개최해 2026년부터 5년간의 국가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 두 이벤트 전까지 북한은 내부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김 총비서의 치적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그간의 정책을 결산하고 새 정책의 당위성을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9차 당 대회로, 북한은 차기 당 대회에서 새로운 외교 노선을 수립할 가능성이 크다. 북미 대화와 관련한 북한의 의중도 이때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날 신문은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진행된 제3회 유라시아 안보 국제회의에 진행된 최선희 외무상의 연설 내용도 보도했다. 최 외무상은 '한미일 군사 동맹'이 지역 안보를 위협하고, 현 정세의 책임이 한미일에 있다고 떠넘기며 북한의 대외 기조에 변화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최 외무상은 "유라시아 지역 동쪽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미일한 3자 군사동맹 체제가 본격적인 가동에 진입하여 지역의 안보 환경을 엄중히 위협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의 존위와 발전권, 안전 이익을 수호하고 지역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국방력 강화의 길에서 순간도 정체하거나 추호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지난 28~29일에 진행된 연설 내용을 이날에서야 공개했는데, 이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민생을 챙긴 김 총비서의 공개활동과 함께 엮어 보도해 북한의 현재 기조를 부각하면서도 최고지도자가 직접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는 않는 뉘앙스를 풍기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떠나며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돌아오겠다"라고 말했지만, 두 정상의 만남 여부와 시기는 내년 북한의 새 대외 기조가 세워진 뒤에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omangcho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