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통일 안 한다"면서…2년째 '남북 두 국가' 헌법 개정 미뤄

지난해 '적대적 두 국가' 헌법 개정 예고했으나 아직 개정 안 해
외교 공간 축소 우려 가능성…中의 반대 있었을 가능성도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가 9월 20일과 21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연설을 통해 한미를 향한 대외 메시지를 밝혔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열린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결단코 통일은 불필요하다"라고 '남북 두 국가' 정책을 지속할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다만 지난해부터 헌법을 개정해 '남북 두 국가' 정책과 관련된 여러 내용을 반영하겠다는 계획은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김 총비서가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조선반도(한반도)에 지구상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이 첨예하게 대치해 온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며 "완전히 상극인 두 실체의 통일이란 결국 하나가 없어지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적대국과 통일을 논한다는 것은 완전한 집착과 집념의 표현일뿐이며 그렇게 고집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숙적인 두 개의 국가가 통일된 사례가 세계사에 있었느냐, 어느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느냐"라고 강조했다.

다만 김 총비서는 "명백히 우리와 한국이 국경을 사이에 둔 이질적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 국가임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며 아직 '두 국가' 관련 내용이 북한의 헌법인 '사회주의 헌법'에 반영되진 않았음을 시사했다.

김 총비서는 지난 2023년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처음으로 남북관계를 '두 국가' 관계로 새로 정의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는 남북을 '특수관계'로 보고 통일과 민족의 개념을 기반으로 구성한 기존의 통일 및 대남 정책을 전면 폐기해 남한을 '다른 국가'로 대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김 총비서는 지난해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남북관계를 다시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헌법에 영토·영해·영공 조항을 신설해 주권 행사 영역을 규정하고, 통일과 관련한 표현을 모두 삭제"하는 내용의 개헌을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는 김 총비서의 언급으로 봤을 때 아직 개정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총비서는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 재임 때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가 만들어진 것을 두고 "우리 국가에 가장 적대적인 태생적 본성을 성문화했다"거나 "199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각각 유엔에 독립적으로 가입하며 국제적으로 완전히 두 개의 국가로 고착된 것"이라며 남북이 이미 오랜 시간 '두 국가'로 살아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은 국제법으로 봤을 때나 현실적으로나 '실재하는 두 국가'"라고 언급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김 총비서가 남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자신의 주장을 강화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2년간 꾸준히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하면서도 최고지도자의 지시사항인 헌법 개정을 늦추는 이유는 외교적 보폭 확보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과 멀어지는 것이 이득이 되지만, 남한을 완전히 버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가장 높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외교가 아직 본격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헌법에 '남북 두 국가'를 반영하면 향후 한미가 공동으로 대북 외교에 나서는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김 총비서는 이날 연설에서 자신들이 핵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이미 헌법에 명기됐음을 강조, "이제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우리더러 위헌 행위를 하라는 것"이라며 헌법의 중요성을 부각하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의 문제이면서 국제적 성격을 지닌 복합성이 있다"며 "비핵, 평화, 관계 정상화 등이 서로 얽혀 있음을 김 총비서도 잘 알고 있음을 보여 준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두 국가론' 고착화에 대한 중국의 반대가 김 총비서의 예상보다 강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총비서는 이달 초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두 국가론'을 설명하고 지지를 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입지가 공고화되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