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전 과정 폰에 담았다…"내 탈북은 적나라한 생존 이야기"[155마일]
이도건 다큐멘터리 감독 인터뷰
"붙잡혀도, 버려진 영상이 'SOS' 신호로 세상에 남길 기대했다"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대부분의 탈북 이야기는 '말'과 '글'로 존재해 왔다. 우리는 생생한 증언을 머릿속에 그려 가며 탈북민들의 시선을 좇아 그들의 탈북 루트를 상상해야만 했다. 탈북 당사자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 과정을 영상으로 담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천운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생사가 오가는 탈출의 길에서 이것을 해낸 사람이 있다.
지난 23일 뉴스1과 화상으로 만난 이도건 씨는 탈북 영상을 기록하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유행하기 직전, 가족들과 압록강을 건너 대한민국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북한에서 사용하던 중국산 휴대전화와 중국 도피 생활 중 구매한 휴대전화로 기록했다.
안전하게 한국에 온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중국 공안에 체포된다면 그대로 '지옥행'이 분명했다. 중국에 머물기 위한 탈북과 한국행을 염두에 둔 탈북에 대한 북한 당국의 처벌엔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런 영상을 촬영했다는 사실이 발각된다면 목적지가 한국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만약 붙잡힐 조짐이 보인다면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버릴 생각이었다고 한다.
불안 속에서도 이 씨가 촬영을 이어 간 것은 자신의 기록이 최악의 경우 세상에 보낼 수 있는 하나의 'SOS'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사 붙잡혀 고문을 당해 죽더라도, 도중에 버린 휴대전화에 저장된 영상을 통해 언젠가는 '그들이 왜 죽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세상에 남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북한에서도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개인의 영상 촬영이 확대됐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큰 착각이라고 이 씨는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개인이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불법이지만, 영상에 글자가 들어가면 선전물의 구색을 갖춘 것이기 때문에 더 위험해진다"며 "북한은 개인 일기장에 아무리 속마음을 적어도 언젠가 '범죄의 씨앗'이 될 수 있기에 위험 요인으로 삼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북한 내부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을 소지한 탈북민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구나 생사조차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는 와중에 영상을 촬영하거나 기록물을 들고나오는 것은 몇 배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탈북민이 북한산 휴대전화를 가지고 나오는 경우는 늘어날지 몰라도, 탈북의 전 과정을 영상에 담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고 이 씨는 말했다.
탈북 과정에서 이 씨가 실제로 체력적인 한계보다 더 경계한 것은 심리적인 문제였다. 그가 산속 생활을 이어 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도 함께 나온 아이들의 '공포심'을 잠재우는 일이었다. 압록강에서 중국의 선양시까지 이동하는 약 한 달 반의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도 체력 소모가 심한데, 거기에 불안감까지 더해지면 꼼짝없이 발이 묶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가장 지루한 저녁 시간대에 아이들에게 한국 드라마를 한 편씩 보여 줬다고 한다. 이 씨는 "지금도 그때의 영상을 보면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 보인다"며 "(아이들에게) 그때의 기억을 물어보면 등산 간 것처럼 재미있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드라마 시청 시간에 휴대전화 배터리 소모가 가장 컸지만, 태양열 배터리 충전기로 버티며 힘든 시간을 웃으며 지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남한에 정착하고 3년 후, 중국에서 숨어 지냈던 장소를 다시 찾아갔다. 총 13군데 정도로 추려지는데, 그중 일부인 5곳만 갔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이 씨는 현장에서 되살아나는 끔찍했던 기억에 설명을 덧붙여 당시 험난했던 과정을 다큐멘터리 '온갈' 시리즈를 제작하며 풀어내고 있다. 지난 2월 1편이 세상에 나왔다.
"제가 제작하는 영상엔 북한 체제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탈북 동기도 안 나와요. 그냥 한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보길 바랐습니다. 내가 만약 저 자리에 있었으면 같은 인간으로서 이겨 낼 수 있었을까, 탈북민들이 어떤 길을 거쳐서 여기에 왔는지를 보여 주고,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는 '북한 인권'을 강조하거나 '북한 정권'을 헐뜯기 위해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큐에서 '탈북할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체제를 비난하거나 가난한 현실 등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장치 없이, 적나라한 탈출 과정을 최대한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애초부터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탈북 과정을 촬영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한국에서 유튜브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외장하드를 사서 탈북했을 것"이라며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기록을 남기던 습관이 지금의 다큐 제작까지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그가 북한에 있을 때 촬영한 영상은 30여 개인데, 그중 처음 촬영한 영상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탈북이 영상 촬영의 동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에 탈북민을 향한 다양한 시선과 생각이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고 한다. 당연히 탈북민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이 대다수일 줄 알았는데, 누군가는 '먼저 온 통일', '한민족 이웃 주민'으로 부르는 탈북민을 다른 누군가는 '빨갱이', '반역자'로 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그래서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보다도 한 '인간'으로서의 공감을 먼저 불러일으키고 싶었던 이 씨는 자신의 영상 속 인물들도 편견 없이 보이길 바랐다. 그는 "인간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가 시작돼야 탈북민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고, 공감이 시작된다고 본다"며 "제일 보편적 가치가 인권이라면 남북한 인권 가릴 것 없이, 그저 자유를 찾는 한 인간의 여정을 먼저 보여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온갈'은 '온 길'과 '갈 길'의 줄임말이다. 이 씨가 말하는 탈북민의 '갈 길'은 "오직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인 '먼저 온 통일'답게, 있는 그대로를 전달해 주고 문제에 대한 해답이나 이해는 대중에게 맡기고 대한민국 국민이 결정하게 하는 것"이라며 "이 땅에 온 탈북민이 '갈 길은 무엇인지'에 대해 주체성과 정체성을 바로 가져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올해 하반기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북한에서 이 씨가 집필한 사회고발 소설 '끓일 수 없는 가마'가 오는 8월 말에 발간된다. 북한에서 가족에게도 비밀로 하며 3년간 집필한 이 소설에 그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담겼다.
아울러 다큐멘터리 '온갈' 2부는 오는 9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온갈'은 3부작을 목표로 제작 중이며, 여러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나오는 과정과 한국에서의 정착기 등을 다룰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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