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구축함 22일 만에 '회복'한 北…사고를 결속으로 바꾸는 선전술
사고부터 복구 과정 낱낱히 공개…'실패'를 결속 및 체제 강화 계기로
- 최소망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북한이 지난달 진수 중에 넘어져 파손된 5000톤급 새 구축함을 22일 만에 완전 복원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복원에 성공한 것으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진수식을 진행했다.
북한은 지난달 21일 발생한 이 사고를 이튿날 바로 공개한 뒤 사고 수습과 책임자 처벌 과정을 이례적으로 상세히 공개했다. 구축함 진수를 김 총비서의 역점사업으로 진행한 만큼 인민들에게는 배의 진수 실패가 김정은 총비서의 실패로 여겨질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관련 내용을 빠르게 공개하며 체제 강화 및 결속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사건은 지난달 21일 동해의 청진조선소에서 발생했다. 김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최현급'의 두 번째 구축함 진수식 중 배가 균형을 잃으면서 넘어진 것이다. 이에 '격노'한 김 총비서는 이달 하순(날짜 미정)으로 예정된 노동당 전원회의 전까지 배를 복원하고, 관련 조사를 진행해 책임 소재를 가릴 것을 지시했다.
북한은 사고 다음 날인 5월 22일 사고 조사를 위해 꾸려진 TF(태스크 포스)가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함의 균형성을 회복하는데 2~3일, 현측 복구에 10여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보고했으며 청진조선소의 홍길호 지배인이 소환됐다고 밝히는 등 사고 수습을 빠르게 진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북한 매체들은 리형선 당 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 부부장을 비롯해 강정철 청진조선소 기사장, 한경학 선체총조립직장 직장장, 김용학 행정부지배인 등이 구속된 사실도 수시로 보도했다.
이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한 김 총비서는 구축함 복구 과정에서 직접 군 고위급 회의체인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강철 같은 규율을 굳건히 확립할 데 대한 중요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군의 정치사상 관련 사안을 담당하는 정경택 총정치국장의 계급이 강등되기도 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6일 자에서 "6월 초 함의 균형성을 복원하고 5일 오후까지 함을 종진수하여 부두에 계류"시켰다면서 넘어진 배를 세웠다고 밝혔다. 그리고 청진조선소에서 멀지 않은 나진항으로 배를 옮겨 세부 수리를 진행했다.
북한은 이러한 과정 끝에 지난 12일 나진조선소에서 '강건'으로 명명한 새 구축함의 진수식을 성대히 개최했다. 김 총비서는 딸 주애와 함께 행사에 참석해 진수식을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김 총비서는 연설에서 "사고 복구 과정에 구축함 설계의 안정성과 기술적 우수성이 확인되고 함선 건조에 관한 발전적인 견해들도 확립됐다", "무책임성과 경험주의에만 쩌든 비과학적인 태도와 관점들에 강한 타격을 줬다", "완벽한 일본새를 굳히게 하는 획기적 계기가 됐다", "참으로 커다란 교훈을 축적했다"라고 자평하며 이번 사고를 질책하기보다 잘 극복한 것을 치하하는 데 중점을 뒀다.
특히 사고 수습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사실도 공개했다. 김 총비서는 연설에서 조금혁 청진조선소 현대화직장 제관1작업반장이 순직한 사실을 알리며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유가족에게 '사회주의애국희생증' 수여도 약속했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이같은 언급을 한 것은, 북한이 이번 사태 발생 후 수습 과정을 체제 결속의 계기로 삼아 22일간의 선전전을 펼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김 총비서와 딸 주애, 간부들은 진수식 후 야간 행사로 기념공연까지 관람했다. 화려한 연출이 가미된 기념공연은, 자칫 실패의 이미지가 부각될 수 있었던 구축함 파손 사건을 극적으로 이겨냈다는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사고를 은폐하는 대신 공개적으로 정치화하고 사고 이후 복구 과정을 통치의 정당화 도구로 전환해 사상적 교양의 기회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김 총비서의 정치 시스템이 실패조차 자기 체제를 강화하는 '내러티브'로 흡수하는 위기관리 및 전환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새로 진수한 구축함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는 추가적인 동향 분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진수식 직후 함무장 실사격 시험 실시 여부 등이 이를 판단할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이날 "외형상 파공 등 심각한 피해는 없는 것으로 보이나 주요 장비의 침수·손상 시 원상 복구에 장기간 소요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난 4월 '최현'호 진수식처럼 해상 접안으로 이뤄진 것과는 달리 건도크 내에서 진수식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추가 수리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somangchoi@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