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北지뢰 대치, 또 '南자작극' 몰이…이번엔 출구도 막막

김여정, 월선 부인하며 반격수단 증강 예고…우리 군 대응수위 압박
2015년엔 고위급 접촉해 수습…통신선 단절 속 평화공존 구상도 흔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 국회(정기회) 국방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 출석해 비무장지대(DMZ) 지뢰 추정 폭발 사고 관련 현안보고 후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9.29 ⓒ 뉴스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윤주현 기자 =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고를 11년 전 목함지뢰 사건 때처럼 '자작극'으로 몰아붙이며 책임을 전면 부인했다. 북한이 전방 반격수단 증강과 실제 사격에 대한 즉각 보복을 예고한 데 대해 우리 군도 북한의 '요새화' 중단과 사과를 요구하면서 남북의 '강대강' 대치가 격화하고 있다.

지뢰 사고의 책임 공방에 북한군의 군사분계선(MDL) 월선 여부와 우리 군의 경고방송·사격을 둘러싼 갈등까지 겹치는 모습이다. 2015년에는 고위급 접촉을 통해 대치의 출구를 찾았지만, 현재는 남북 통신선마저 끊겨 긴장을 관리할 공식 소통 통로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자작극' 주장 넘어 보복 위협…北, 우리 군 대응까지 겨냥

북한의 대외 총괄이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30일 발표한 담화에서 이번 지뢰 사고를 '명백한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군이 조사 결과를 조작해 대북 정치·군사적 행동의 명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북한군의 MDL 월선도 전면 부인했다. 접경지역 차단물 공사를 '주권 행사'로 규정하면서 북한군 월선에 대응한 우리 군의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도발로 몰아붙였다.

한국군 3군단 예하 21보병사단 방향에 '전술적 반격수단'을 증강하기로 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공사 중인 북한군에 실제 사격을 가하면 즉각 보복하라는 대응지침을 현장 부대에 하달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특정 부대와 반격수단, 보복 조건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우리 군의 후속 대응을 제약하려는 성격이 있다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합동참모본부의 잠정 조사 결과 발표 하루 만에 김 부장이 직접 나선 데 주목했다. 군 실무 차원의 반박을 넘어 최고지도부와 가까운 김 부장이 직접 대응함으로써 우리 정부의 상응조치 결정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북한이 반격수단 증강을 예고한 곳은 이번 지뢰 사고가 발생한 서부전선 25사단 관할이 아니라 중동부전선 21사단 방향이다.

홍 연구위원은 북한이 서부전선의 지뢰 사고에는 자작극 주장을 내놓으면서, 국경화 요새화 작업이 진행 중인 21사단 방향에 군사적 위협을 집중했다는 점을 짚었다. 북한의 관심이 지뢰 사고 책임 부인뿐 아니라 공사 인력 보호와 작업 지속에도 있다는 뜻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북한이 공사를 주권 행사로 정당화하고, 향후 충돌이 발생하면 남측의 도발에 보복했다고 주장할 명분을 미리 쌓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군의 대응을 위축시키면서 접경지역 차단 작업은 계속하려는 계산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군은 북한의 책임을 명시하며 맞섰다. 합참은 이날 입장문에서 북한의 지뢰 매설 등 이른바 국경선 요새화를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하고 즉각 중단과 사과,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향후 발생하는 상황의 책임도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훈련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2023.2.19 ⓒ 뉴스1 박지혜 기자
11년 전에도 '자작극'…이번엔 긴장 해소할 공식 통신선도 끊겨

북한의 책임 부인과 군사적 위협은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당시의 대응과 닮은 점이 있다. 당시에도 북한은 책임을 부인했고,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군사적 대응을 위협했다. 이후 남북 간 포격과 대응사격,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로 군사적 긴장이 급격히 높아졌다.

다만 당시에는 대치를 수습하기 위한 협상도 병행됐다. 남북은 판문점 고위급 접촉 끝에 우리 장병 부상에 대한 북측의 유감 표명, 남측의 확성기 방송 중단, 북측의 준전시상태 해제 등을 담은 '8·25 합의'를 도출하며 긴장을 낮췄다.

이번에는 우리 정부가 구체적인 상응조치를 결정하기도 전에 북한이 먼저 군사적 위협을 앞세웠다.

홍 연구위원은 2015년에는 확성기 재개 이후 북한의 위협이 단계적으로 높아졌지만, 지금은 김 부장이 선제적으로 나서 한국의 대응 결정을 압박하고 있다고 비교했다.

문제는 이런 대치 국면을 대화로 전환할 여건도 11년 전과 달라졌다는 점이다. 통일부는 전날 남북 통신선이 모두 끊겨 북측에 통지문을 보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군사적 위협은 구체화하는데 현장의 오판을 해소할 공식 소통 수단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사건 자체를 자작극으로 규정한 만큼 사실관계 확인과 책임 인정, 사과를 통한 해결도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제시한 보복 조건도 변수다. 북한은 실제 사격과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지역으로의 탄착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MDL 월선 여부부터 양측의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경고사격의 성격과 탄착 지점을 둘러싼 이견까지 더해지면 추가 충돌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보복 위협에 더 좁아진 대화 공간…정부 평화공존 구상도 제동

남북의 군사적 대치가 고조되면서 접경지역 긴장 완화를 발판으로 대화를 복원하려던 정부의 구상도 부담을 안게 됐다. 북한에 책임을 묻는 동시에 추가 충돌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관계 개선에 곧바로 속도를 내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압박 수위를 높이는 조치 역시 접경지역 군사적 긴장을 더 끌어올릴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에 실효적으로 책임을 묻되 확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문제가 정부의 과제가 된 셈이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북한이 군사적 위협으로 우리 대응을 억제하는 동시에 국내 정치적 갈등을 자극해 일관된 대북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책임 추궁과 관계 개선 사이에서 정부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사실에 근거해 정전협정 위반에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하되, 북한의 반응을 보며 비례적·순차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책임을 정부가 공식화한 이후에는 "유화책은 당분간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