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서 놓친 '영변+α', 7년 새 더 커졌다…北 핵탄두 생산 능력 급증

IAEA, 영변·강선 등에서 새 우라늄 농축시설 '실가동' 확인
김정은 "무기급 핵물질 생산 능력 2배 늘었다" 능력 고도화 과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북한이 영변과 강선에서 우라늄 농축 기반을 동시에 넓히고 있다는 정황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로 확인됐다. 북한이 확대된 핵물질 생산 능력을 지렛대 삼아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해 향후 북미 대화에서 '비핵화'를 협상 의제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는 관측이 10일 나온다.

비핵화로 이어질 후속 합의 없이 일부 핵시설 동결이나 핵무기 폐기와 대북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스몰딜' 방식의 협상이 성사된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채 경제적 보상을 얻게 된다. 이는 북한이 상정한 최상의 시나리오 중 하나로 꼽힌다.

"핵물질 생산 2배 달성" 공언한 김정은, 핵능력 고도화 지속

지난 7~8일 공개된 IAEA의 대북 안전조치 보고서에 따르면 그간 위성사진으로 포착된 영변 핵단지에 새로 들어선 2층 건물이 새 우라늄 농축시설로 식별됐다. 지난 6월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현지지도 보도를 통해 내부만 공개한 건물과 같은 곳으로 분석된다.

이 새 시설은 원심분리기 여러 대를 연결한 농축 설비인 캐스케이드를 최대 28개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추정된다.

평양 인근 강선에서도 2024년 건설된 새 우라늄 농축시설이 올해 1월 가동에 들어간 정황이 관측됐다. 북한이 새로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건설한 것은 여러 정황을 통해 포착이 됐지만, 이 시설이 실제 가동 중인 정황이 IAEA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우라늄 농축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증거로, 일각에선 북한의 무기급 핵물질 연간 생산량이 2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실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6월 새 핵시설 방문 때 "지난 5년간 무기급 핵물질 생산 능력은 종전의 2배를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면서 "국가핵무력을 기하급수적으로 강화할 앞으로의 방대한 계획을 확정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영국 군비통제 검증 전문기관 버틱(VERTIC)도 지난 6월 새 영변 시설이 완전히 가동되면 북한의 우라늄 농축 능력이 기존에 파악된 규모보다 약 75% 늘어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 같은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및 과시는 7년 전의 '비핵화 협상' 방식을 전면 거부하고 핵보유국 인정을 받겠다는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 미국이나 한국에 비대칭성을 주장할 수 있는 수준의 핵능력에 도달해야 협상의 판을 바꿀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행보라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뉴스1과 통화에서 "핵물질 생산 능력을 드러내는 것은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것"이라며 "일부 핵능력만 제한하고 나머지 핵능력은 그대로 유지하는 핵군축 협상을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버틱의 분석에 참여한 신재우 오픈뉴클리어네트워크(ONN) 선임분석가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새 핵시설이 깊은 산속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감시가 집중된 영변 한복판에 세웠다면서, 이는 국제사회에 의도적으로 핵능력 고도화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핵탄두 탑재 수단, 즉 탄도미사일의 다변화도 북한이 한미의 비핵화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상대방의 방어 능력을 분산하거나 떨어뜨려야 협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현실 인정" 거듭 요구하는 北…한미는 공동 전략 수립 못해

김 총비서는 지난 6일 두 번째 5000톤급(최현급) 구축함인 '강건'호의 취역식에서 "해군의 핵무장화 실현을 통해 핵전투체계들의 다각적인, 효과적인 운용을 실전화하겠다"라고 밝혔다. 해군력 강화를 위한 '중요한 계획'을 8개월 후에 공개하겠다고도 예고했는데, 지난해 3월 함체 일부가 공개된 북한의 첫 핵추진잠수함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원곤 교수는 이 같은 북한의 행보를 다량의 핵물질 생산부터 다양한 투발 수단을 확보한 핵보유국으로서의 능력을 과시하는 흐름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듬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미국에 제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국은 '영변 플러스알파(+α)'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그리고 북한의 핵능력은 계속 '우상향'했다. 7년 전 협상의 결렬 때만 해도 북한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적기를 놓친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김 총비서는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며 미국이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하면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비핵화를 대화의 목표가 아닌 재개의 걸림돌로 규정한 것으로, 7년 전과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핵화를 위한 전략 수립보다 김 총비서와의 관계를 앞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대북 사안에 대한 한미의 공동 대응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일부 제한하는 대가로 한미의 힘을 크게 떨어뜨리려 할 가능성도 우려 요인이다. 전경주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이슈브리프에서 군비통제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핵능력 일부와 미국의 확장억제를 약화하는 조치가 교환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협상의 '시작' 자체에 집착할수록 시작부터 질 수밖에 없는 협상이 된다"며 비핵화 목표에 대한 한미의 합의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