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두 번, 북송 한 번…이제는 외국인의 '한국 정착'을 설계한다[경계를 건넌 사람들]
함경북도 온성 소년, 실시간 한국어 교정 서비스 '아드' 대표가 되기까지
언어를 넘어 주거·구직까지…탈북 청년이 그리는 '한국 정착 메가 포털'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두만강을 두 번 건넜고, 한 번 북송됐다. 1999년 첫 탈북, 이듬해 북송, 2002년 재탈북. 그리고 2006년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함경북도 온성이 고향인 오광명(34) 대표는 '고난의 행군' 시기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강을 건넌 수많은 탈북민 중 하나였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는 외국인을 위한 실시간 한국어 교정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 '아드'의 대표가 됐다.
오 대표의 탈북은 순탄치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처음 강을 건넜지만 누군가의 신고로 북송됐고, 두 번째 탈북 때는 어머니가 먼저 탈북한 뒤 브로커를 통해 그를 데리고 나왔다. 그사이 중국에서 홀로 지낸 시간이 3년이었다. "그 당시엔 탈북자가 워낙 많아서 수용소 대신 구류소·교화소로 갔다"며 "감시가 심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오 대표는 담담하게 돌아봤다.
교회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교회를 잘못 만나면 수용소로 간다"는 두려움에 일부러 거리를 뒀다. 북송 심문에서 "한국말 하는 사람을 만난 적 있냐", "십자가를 본 적 있냐"는 질문에 잘못 답하면 안 된다는 걸 체득한 어린 시절이었다. 1년마다 지역을 옮겨 다니며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는 함께 나오지 못했다.
한국에 온 뒤에도 적응은 쉽지 않았다. 중국에서만 살아 북한말보다 중국어가 익숙했던 그는 또래 사이에서 '신기한 아이'였다. 친구를 칭찬하려고 "머리가 참 좋다"는 뜻으로 "대가리 똑똑하다"고 말했다가 상대가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있었다. 말투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밖에서 전쟁놀이를 하던 아이는 한국에 와서 PC방에서 전쟁 게임을 하는 법을 새로 배워야 했다.
프로게이머, 유도 선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군인, 배우, 외교관…. 오 대표의 어릴 적 꿈은 숱하게 바뀌었다. "북한에 있을 때는 꿈이라는 게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에 와서야 꿈이 많이 생겼다. 물론 다 실패했지만." 그는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해 외교관을 꿈꿨지만 "공부가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걸 깨달았다며 웃었다.
진로를 바꾼 계기는 2014년 미국 워싱턴DC 방문이었다. 전쟁기념관에서 본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Freedom is not free)"는 문구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후 미국 동부에서 청소년 창업 지원 NGO 인턴을, 서부에서 철강회사 영업 인턴을 경험했다. 대부분 무급인 미국 인턴 시장에서 유급 자리를 찾아 서부까지 건너간 것이었다. 이 철강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일한 경력이 이후 그가 IT 업계로 방향을 튼 계기가 됐다.
문과 출신이라 개발 지식이 부족했던 그는 한국에서 IT 회사에 취업해 4년간 경험을 쌓았다. 창업을 결심한 것은 회사 동기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월급쟁이로 살 거냐, 흑수저의 반란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에 뜻을 모아 3~4명 규모로 시작한 게 지금의 아드다.
창업 아이템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 미국 인턴 시절 "영어 회화는 되는데 쓰는 게 약하다"고 느꼈던 그는 실시간으로 영어 문장을 교정해주는 서비스를 접했고, 이를 한국어 버전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마침 한국 사회의 저출산·고령화로 외국인 유입과 이민정책 완화가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창업을 앞당겼다.
아드는 출시 4~5개월 만에 35개국에서 1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모았다. 별도 광고 없이 얻은 성과다. 국내에서는 대안학교와 북한이탈주민 및 제3국 출신 자녀들을 대상으로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PoC(개념 증명) 형태의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모바일 메신저와 댓글은 물론 지메일 작성 화면에서도 우측에 실시간으로 교정 문구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오 대표가 그리는 최종 목표는 언어 교정을 넘어선다. 그는 "한국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유학이나 취업 같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라며, 정착에 필요한 주거·구직 정보까지 아우르는 '메가 포털'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이 서비스가 통일 이후 남북 간 언어·문화 교차 문제에서도 쓰임새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오 대표는 한국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태어나는 순간 직업이 정해진다. 부모가 광부면 광부, 농사꾼이면 농사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도 거기 계속 있었다면 아마 훌륭한 농사꾼이 됐을 것"이라며 "지금 누리는 자유는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 앞선 세대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뉴스1·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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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계선을 넘어 새로운 삶에 정착한 이들. 정착 이후에도 크고 작은 경계를 극복해 온 사람들의 삶을 기록합니다. 지리적 경계만이 아니라 문화와 관계의 새로운 세계를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삶 위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몰랐고, 알아야 할 삶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