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침묵하는데, 우리는 너무 멀리만 본다[한반도 GPS]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2023.2.19/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2023.2.19/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북한 관련 기사엔 특정 표현들이 유독 반복되곤 합니다. '분석됩니다', '해석됩니다', '관측됩니다'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말이 겹겹이 쌓이면 이내 자문하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알고, 무엇을 확인한 상태에서 북한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요.

북한은 핵심 국면일수록 말을 아낍니다. 특히 대외 상황의 변화가 빠르고 깊을수록, 노동당의 주요 의사결정체인 전원회의나 당 대회 등에서도 자신들의 방향성과 결정을 숨기곤 합니다. 잦은 교섭을 통한 외교적 해결책 모색보다는 '한 방'으로 상황을 바꾼다는 오래된 전략에 따른 침묵은 북한이 즐겨 쓴 수단입니다.

문제는 이 침묵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의 대응입니다. 저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북한이 말을 줄일수록 한국에서는 오히려 '말이 많아지는' 현상이 반복되는 듯합니다.

북한이 밝히지 않은 북한의 상황을 단정하고 희망적 관점에 기반한 정부의 기조를 덧붙이는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의 브리핑이 이어지고, 각종 포럼과 세미나가 열리며, 정책 설명 자료와 분석 보고서가 잇따라 나옵니다. 정보의 양은 분명히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선명하게 확인됐거나 확인되는 사실이 되진 못합니다. 중요한 질문에는 "확인에는 제한이 있다"는 답이 반복되고, 이를 다시 인용한 기사와 분석이 동시에 쏟아집니다. 서로 내용은 비슷하지만, '팩트'라고 부르기에는 조심스러운 이야기들이 병렬적으로 축적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이 무언가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북한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하지만, 그 많은 말들이 오늘 이 순간 현실에서 확인된 경우가 많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기정동 마을. 2024.10.1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이 같은 현상은 북한 관련 정보가 정부 차원에서 통제되는 현실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소비하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불편한 구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까운 북한을 굳이 망원경으로 보고 분석하려고 합니다.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관찰하는 것보다는, 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앞세우면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현재형으로 당겨옵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북한을 둘러싼 담론은 점점 '관측'과 '예상'의 영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때론 비슷한 분석이 반복되고, 서로를 인용하며 담론이 확대되지만, 검증 가능한 사실은 늘지 않습니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확정성은 낮아졌고, 설명은 늘었지만 이해가 깊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책 당국과 전문가 집단, 연구자와 언론이 함께 얽힌 좁지만 비대한 구조입니다.

북한은 여전히 침묵하고, 우리는 멀리서만 바라봅니다. 북한을 둘러싼 여러 논의는 사실에 대한 분석보다 그저 '점쳐지는' 전망이 앞서는 방향으로 심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과 분리된 전망과 자의적 해석은 결국 확장하지 못하는 자기 확신으로만 귀결될 뿐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가에 대한 솔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침묵을 억지로 해석하기보다 조금 더 지켜보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 영역에 그대로 두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침묵의 의미를 읽는 자세도 꽤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지를 경쟁하지 말고, '우리의 말대로 하면 북한이 나온다'고 자만하지 말고, 지금 남북이 제각기 어디에 서 있는지를 냉정하게 점검하고, 새로운 출발선을 그어야 할 시점일 수도 있습니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