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경색에 발 묶인 협력기금 '1조원'…전용 가능성 모색하는 정부

내년 배정액 1조 넘지만…北 외면 속 교류 사업 어려워
기금법 개정 통해 국내 통일사업·접경지 개발에 활용 구상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통일부

(서울=뉴스1) 임여익 유민주 기자 = 정부가 남북관계의 단절로 사실상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남북협력기금'을 보다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매년 1조 원 규모의 예산이 편성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남북 간 교류 사업이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예산을 국내 통일 관련 사업·연구와 접경지 개발 등 남북관계 개선에 대비하고 국내의 통일 관련 여론 조성에 골고루 사용할 수 있게 현행법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28일 통일부에 따르면, 내년 남북협력기금 예산은 총지출 기준 1조 4270억 원이다. 이 가운데 1조 3억이 실질적인 사업비에 해당한다. 실질 사업비를 제외한 예산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공공자금관리기금 원리금 상환 3700억 원 △기획재정부 여유자금 545억 원 △수출입은행 기금운영비 22억 원 등 부가적인 요소에 속한다.

기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업비가 지난 정부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다. 사업비는 지난 2023년까지 1조 원대를 유지하다가 윤석열 정부 시절인 지난 2024년 8722억 원·2025년 7981억 원으로 감소했는데, 남북 교류와 협력을 중요시하는 이재명 정부 들어 다시 1조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이 장기화하며 교류가 불가능해지면서, 기금 중 실제 집행되는 금액은 극히 일부다. 최근 3년간 집행률은 지난 2022년 6.1%, 2023년 1.9%, 2024년 3.8%로 평균 3.9%에 그쳤다.

이에 맹목적으로 예산을 증액하는 것보다 기금의 사용처를 오늘날 한반도 정세에 맞게 확대 및 개편하는 게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정동영 "北과 합의 없이도 국내 통일 정책 위해 쓸 수 있어야"
정동영 통일부 장관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기금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남북협력기금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현행법 제8조는 기금 용도를 '남북 간 직접적인 교류사업'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6일 "남북협력기금은 지금 수십 년째 예산 편성만 하고 전혀 집행을 못 하는 상황"이라며 "평화통일 기반 조성에 기여하는 사업이라면 꼭 북측과 합의되지 않더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서는 '남북협력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 10월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제안된 상태다.

개정안은 기금의 용도에 △기후·문화유산·산림 분야 협력사업 △남북 당국의 조치로 교역·경협 사업이 정지된 경우 관련 보험에 가입한 기업의 피해에 대한 재정적 지원 △남북교류·협력 촉진 목적의 민간단체의 사업 및 활동 지원 △비무장지대(DMZ) 및 접경지역에서 추진하는 남북교류·협력 촉진 사업의 지원 등의 문구를 추가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은 통일부의 숙원과제였다"면서 "그간 한반도 정세가 여의치 않아 기금 사용이 많이 제약됐는데, 법이 개정되면 국내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민간단체 활동이나 연구 용역을 지원하는 등 정부가 좀 더 재량권을 갖고 여러 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평화경제특구' 계획 아래 DMZ·접경지 지원 사업에도 활용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남북 접경지의 모습 2024.10.1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이는 현재 통일부가 추진 중인 '평화경제특별구역' 개발 계획과도 맞물려있다. 정부는 그간 경제 발전에서 소외돼 온 남북 접경지를 특구로 지정하고, 비무장지대(DMZ)를 국제 생태·평화관광 협력지구로 개발하는 방안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지난 4월과 10월 통일부가 발표한 '평화경제특구' 기본구상에 따르면, 접경지에 해당하는 총 17개 시·군은 크게 3개 권역으로 나뉘어 개발된다.

서부권(강화·옹진·김포·파주·고양)은 '미래 혁신제조업, 신산업 분야 첨단산업단지'로, 중부권(양주·동두천·연천·포천·철원)은 '농업+관광+경공업 융합형단지'로, 동부권(춘천·화천·양구·인제·고성)은 '관광중심 첨단물류·서비스 특화단지'로 육성될 계획이다.

김사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문위원은 "남북협력기금 용도를 접경지역 지원 사업으로까지 확대한다면, 접경지의 균형 발전뿐 아니라 남북 간의 경제적 교류·협력의 기반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분석했다.

이를 기반으로 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확장된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특구 설립에 착수한다. 관건은 여야 간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통일부 장관이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할 때 기금 사용 계획 규모가 1년간 300억 원 이상이거나 2년 이상 계속사업으로 500억 원이 넘는 경우 국회에 사전 보고하고 본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남북협력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는 통일부의 비공개 남북협력사업 예산 편성과 집행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게 송 의원 측의 설명이다.

다만 사용 내역을 100%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남북협력기금법에 따라 정부여당은 이같은 법안 입법에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