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만에 '팩트시트' 반발한 北…남북군사회담 제의엔 여전히 '침묵'
이재명–트럼프 체제 첫 한미공동성명에 '신중 대응' 평가
대결 정책화 공세 속 내부 정치일정 고려한 '톤 조절' 관측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팩트시트에 대해 나흘 만에 첫 공식 반응을 내놨다. 그러나 고위층 담화가 아닌 조선중앙통신 명의의 논평이라는 점, 전반적 표현 수위를 관리한 점에서 북한이 당장 '강 대 강' 충돌 국면을 만들기보다는 신호를 정교하게 조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존 '핵보유국' 입장을 재확인하며 향후 도발의 명분을 확보해 뒀다는 평가다.
조선중앙통신은 18일 '변함없이 적대적이려는 미한(한미)동맹의 대결선언' 논평에서 "최근 미국과 한국이 경주 미한수뇌(정상)회담합의 '공동설명문'과 제57차 미한연례안보협의회 '공동성명'이라는 것을 발표했다"고 언급하며 "미국과 한국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 처음으로 발표된 공동합의문서들은 우리 국가에 끝까지 적대적이려는 미한의 대결의지와 더욱 위험하게 진화될 미한동맹의 미래를 진상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논평은 특히 △팩트시트 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문구 △미국의 핵추진잠수함(SSN) 조달·배치 관련 기술적 설명 △확장억제 운용 내용 등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이어 관세·순환출자·방위비 등 팩트시트의 부속적 세부 언급까지 거론하며 "대결정책이 전면적이고 공식적으로 정책화됐다"고 주장했다. 팩트시트 전체를 면밀히 분석한 뒤 입장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정책적 대응'의 성격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아울러 이번 반응은 최선희 외무상이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 최고위급의 담화 보다 급이 낮은 관영 매체를 통한 논평이다. 과거 핵·미사일, 북미 간 핵심 현안 등에 대해 즉각 고위급 담화를 내세웠던 것과 비교하면 수위가 낮고 메시지는 정교하게 조절된 형태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국자가 아닌 중앙통신 논평 형식에 내용도 기존 입장을 반복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한미 대통령을 거론하지 않고 비난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조목조목 밝히며,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수준으로 수위가 조절된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대응을 '신호 조절'의 성격으로 본다. 우선 고위층 담화가 아닌 논평을 택한 것은 지금 당장 노선을 바꾸거나 충돌 국면을 만들 의도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분석이다.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의 반응과 향후 북·중·러 3각 구도를 충분히 관찰하려는 계산도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와 당 창건일 등 내부 정치 일정이 겹쳐 있는 만큼, 메시지 수위를 전략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이번 논평이 이재명–트럼프 라인 출범 이후 처음 나온 한미공동성명에 대한 공식 반응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초기부터 강경 대응으로 판을 흔들기보다는 '상황 관리형' 접근을 택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나온 한미 메시지에 대해 논평식으로 비판을 한 것이 중심"이라며 "구체적인 대응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볼 때, 향후 상황을 보며 신중하게 단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미 합의의 진행을 지켜보며 12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총화, 2026년 1월 제9차 당대회, 상반기 최고인민회의 등을 통해 전략적 대응 메시지를 발신할 가능성도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논평은 "미한의 대결적 기도가 다시 한번 공식화, 정책화된 데 맞게 국가의 주권과 안전익, 지역의 평화 수호를 위한 보다 당위적이며 현실 대응적인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히며 도발 명분을 확보했다.
군사적 대응 수위에 대해선 원론적 경고 수준에 머물렀지만, 필요시 언제든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셈이다.
논평과 별개로 북한은 전날 한국 정부가 제안한 군사회담에 대해 이날 오전까지 아무런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침묵이 단순한 무반응이 아니라 계산된 시간벌기일 가능성에 주목한다. 팩트시트와 군사회담 제안 등 대외 현안이 동시에 쏟아지면서 내부적으로 정책 정리가 채 끝나지 않았을 수 있고, 군사회담 카드를 대남·대미 전략 재조정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신중하게 대응 방향을 가다듬는 중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기에 연말 전원회의와 내년 초 당대회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이 겹쳐 있어, 대외 노선을 재확인할 시점을 고려한 '관망' 선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국제문제연구소 교수는 "지금은 내부적으로 경제·국방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하고, 내년 초 예정된 9차 당대회 준비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며 "지금은 대외 메시지에서 수위를 조절하고 9차 당대회 이후 강 대 강 대결에 나설 가능성을 열어놓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향후 북한의 대응 수위는 △미국의 후속 조치(핵잠 협력 구체화, 확장억제 실행) △한국 정부의 군사회담 및 대북 메시지 △북한 내부 정치 일정 △북·중·러 공조 구도 등의 영향을 동시에 받을 전망이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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