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두 국가' 구상, 北의 두 국가론과 무엇이 다른지 설명 부족하다"
[두 국가 딜레마]②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인터뷰
"사회적 담론 앞서간 섣부른 구상…북핵문제 등서 한국 발언권 사라진다""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이재명 정부는 최근 '남북 두 국가론'을 새로운 대북 정책의 기조로 내세우는 모양새다. 특히 대북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정동영 장관이 지난달 "남북은 사실상 이미 두 국가"라면서 "남북관계를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자, 정치권과 학계에서 찬반 논란이 거세지는 상황이다.
뉴스1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차두현 부원장을 만나 '두 국가론'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차 부원장은 '평화적 두 국가'라는 개념은 자칫 북한이 먼저 제시한 두 국가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 부원장은 아직 국내에서 두 국가론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관련 논란이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을 촉발하거나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신뢰 훼손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다음은 차 부원장과의 일문일답.
-정동영 장관이 언급한 '평화적 두 국가', 어떻게 보고 있나.
▶우선 정부가 '평화적 두 국가'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023년 연말 제시한 '적대적 두 국가론'에서 앞의 수식어만 바꿔 '평화적 두 국가'라는 구상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평화적' 상태인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다.
이재명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가 일관되게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 간 적대성을 해소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는 것을 보면 결국은 북한이 '적대적'이라고 느낄만한 군사·정치적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유추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접경 지역에서의 군사적 활동을 완화하고 북한인권 실태 등 내부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것,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될 텐데 결과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방향에 좀 더 가까워지는 것이고, 한국 입장에서는 져야 할 리스크가 많아지는 셈이다.
-한국이 부담해야 할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남북이 각자의 국가로 존재한다는 건 바꿔 말하면 우리가 북한 문제에 관여할 여지가 아예 없어진다는 뜻이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핵 개발이나 인권 문제 등에 대해 자꾸 간섭하고 바꾸려 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은 한국이 그나마 남북관계라는 특수성 아래 한반도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두 국가론을 받아들이고 나면 북한에 변화를 촉구할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의 비핵화 목표가 약화할 우려가 있다.
-'평화적 두 국가' 언급이 한미관계는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나.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평화적 두 국가'라는 개념이 설익은 상태에서 나오니까 당장 정부 안에서도 엇박자가 나지 않나. 정동영 장관이 "남북이 사실상 두 국가"라고 말하자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북 정책에서 한미가 일관된 입장을 가져가야 하는데 정부 초기부터 이런 혼선이 빚어지면 미국 정부가 한국에 대한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24년 9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처음 '두 국가론'을 언급했을 때도 큰 파장이 일었다. 이재명 정부에서 이 의제가 재등장한 이유는 뭘까.
▶전반적으로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정권 출범 5월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대북 확성기 철거부터 대북 방송 중단, 북한인권 정책 축소까지 선제적인 유화 조치들이 너무 많았다.
두 국가론 역시 마찬가지다. 남북을 정말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려면 헌법 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와 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를 개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개헌에 대한 합의가 충분히 이뤄졌나. 대다수 국민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남북이 오랜 시간 두 국가 상태였으며,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많이 떨어졌다는 의견도 있는데.
▶두 국가론 찬성파 중 일부는 '요즘 젊은 세대는 통일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국내 2030이 통일을 원치 않는 건 북한을 온전한 국가로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북한과 아예 어떤 교류도 하기 싫다는 인식이다. '평화적 두 국가 상태에서 교류·협력을 적극 추진하자'는 정부 구상과는 정반대에 있는 셈인데, 이같은 상황에서 두 국가론을 꺼내든 것은 국내 여론, 특히 미래세대의 생각을 읽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전혀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북한은 2023년부터 줄곧 두 국가론을 주장하면서도 헌법 개정은 미루고 있다. 북한의 두 국가론 기조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지.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크로스 로드'(교차로)에 있다고 봤다. 그러나 올해 김여정 담화와 김정은 총비서의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보면서, 이제 북한 정권이 두 국가론을 고착화 할 결심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국가 선언은 2023년 12월에 처음 꺼냈지만, 그간 북한 내부적으로도 선조들이 이어온 민족공조론을 폐기함에 따라 새로운 논리를 만들고 이를 북한 주민들에게 학습시키기 위한 준비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김정은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는 등 북·중·러 밀착 행보를 강화한 것도 내부적으로 두 국가론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났다는 신호다. 아마 내년 초 9차 노동당 대회에서 개헌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한국의 두 국가론 수용'을 전제조건으로 남북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두 국가론을 받아들이자는 건 매우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당장 눈앞의 상대가 대화를 거부한다고 그간의 통일·대북 정책을 근간부터 바꾸자는 건 잘못된 것 아닐까. 게다가 우리가 평화적 두 국가를 추진한다고 해서 북한이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과거 우리는 이미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의 선의에만 의존한 대북 정책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확인하지 않았나.
두 국가론을 찬성하는 이들은 '지난 정부에서 우리가 너무 대북 강경책만 폈기 때문에 이제 남북 간의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국제관계에서는 상호 간의 '자신'(confidence)과 '신뢰'(trust)라는 개념이 있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상대에 대한 자신(감)이 몇 차례 형성돼야 그게 누적돼 신뢰가 생기는 것인데, 지금 정부는 남북 간 자신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신뢰부터 구축하자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현 상황에서 정말 현실적인 남북관계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말 어렵고 복합적인 문제다. 지금은 국제 정세가 어느 때보다 훨씬 복잡해진 만큼 더 이상 남북관계를 양자 사이에서만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미국·중국·일본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 속에서 남북 대화를 추동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추구하는 대북 교류와 협력, 투자도 정부 주도로만 하기보단 국제적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추진해야 효율적일 것이다. 무엇보다 두 국가론처럼 아직 정립되지 않은 이론을 언급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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