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E·N·D 이니셔티브' 선언…새 정부 첫 대북 원칙 확정

유엔총회 연설…교류(E)·관계 정상화(N)·비핵화(D) 중심의 '포괄적 대화' 제안
"비핵화 단기에 해결 어렵다, '현실적' 방안 모색"…'군축' 추진 의사 재확인

이재명 대통령.2025.09.21.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새 정부의 첫 대북 원칙을 제시했다. 비핵화보다 '관계 정상화'가 우선 과제이며, 비핵화는 장기적 관점에서 '현실적 방안'을 통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국제사회에 공표했다.

이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제80회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남북 간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 대화'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겠다"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를 'E·N·D 이니셔티브'라고 소개했다. 과거 '드레스덴 선언'(박근혜 정부), '베를린 구상'(문재인 정부), '담대한 구상'(윤석열 정부)과 같이 새 정부의 첫 '대북 원칙'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민주 대한민국은 평화 공존, 공동 성장의 한반도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겠다"며 "그 첫걸음은 남북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 존중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해 북한과의 긴장을 낮추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라며 이를 '3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북한이 한국의 통일 정책이 여전히 과거 정부의 '흡수통일 야망'과 같다고 비난하는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또한 이 대통령은 "교류와 협력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남북관계의 역사가 증명한 불변의 교훈"이라면서 "남북 간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의 길을 열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는 '중단-축소-폐기'라는 기존의 구상을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비핵화는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냉철한 인식의 기초 위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북핵 고도화의 '중단'에서 시작해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단계적 해법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관계는 물론 국제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북미관계 발전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하겠다는 입장도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의 가장 큰 특징은 북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담겼다는 것이다. '비핵화'라는 목표는 유지되고 있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과거 어떤 정부도 인정하지 않았던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 구상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공동의 노력으로 비핵화 추동력을 유지한다는 생각을 밝혔지만, 북한이 '비핵화는 없어져야 할 개념'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고, 추후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북한이 일정한 수준의 보상만 받은 뒤 테이블에서 빠진다면 북한의 국력 상승에 따른 북핵의 공고화라는 더 나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해결책 제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 / 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지난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기조로 한 대북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2017년 7월 문 전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에서 밝힌 '베를린 구상'에 기반한 것으로, 남북 간 적대적 긴장과 전쟁 위협을 없애고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선수단 참가, 2018년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 2018부터 2019년까지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 등이 성사됐으나,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 핵과 미사일 위협을 가중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정책도 힘을 잃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 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8·15 통일 독트린'을 천명했다. 집권 초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서면 6가지 항목의 지원을 하겠다는 첫 대북 구상인 '담대한 구상'에서 노선을 일부 수정한 것이 8·15 독트린이었다.

8·15 독트린은 통일을 위한 3대 추진 과제로 △국민들의 가치관 확립 △자유 통일을 원하도록 북한의 변화 추동 △국제사회 연대를 제시하며 북한의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유도하고 한국 사회의 대북·통일 인식 변화에 중점을 뒀다는 것이 특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 뉴스1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3대 통일 목표인 △남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한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을 목표로 하는 '드레스덴 구상'을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모자(母子) 패키지 사업, 복합농촌단지 조성, 역사·문화예술·스포츠 교류 활성화 등의 사업들을 제시했고, 북한도 이산가족 상봉 등에 응하며 일부 호응하는 듯했으나 북핵의 고도화로 인해 개성공단이 문을 닫는 등 궁극적 성과를 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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