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주장하는 北, 과거엔 "한반도에 핵도, 살상 무기도 안 돼" 주장

[남북대화 사료집 공개] '핵보유국' 지위 집착, 현재와 극명히 대비

1991년 12월 판문점에서 진행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 (통일부 제공)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핵무기 그다음에 화학 생물무기, 이것을 제거한다 하는 조항이 있는데 대단히 반갑습니다."

북한이 과거 핵무기와 살상 무기 제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우리 측을 압박한 사례가 남북회담 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최근 북한이 '불가역적 핵보유국' 지위에 집착하는 모습과 극명히 대비되는 장면이다.

2일 통일부가 공개한 '남북대화 사료집' 회의록 편 5권에 따르면 1991년 11월 11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열린 고위급회담 1차 예비회담에서 북측은 남한의 미군 핵무기 제거가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내포된다는 전제하에 자국의 핵무기 및 화학무기 제거에 강력히 동의했다.

당시 예비회담이 열리기 사흘 전인 8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핵무기의 '제조·보유·저장·배비·사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천명한 상태였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핵무기 존재 여부에 대해 미국의 NCND(긍정도 부정도 아닌) 정책을 고수해 왔는데, 이를 포기하고 비핵화 범위를 '한반도' 전체로 확장했다.

이 예비회담 자리에서 북측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선언이 "좀 미숙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측은 한국이 미국의 NCND 정책을 따르고 있기에 아직까지 한국의 미군 핵무기 제거가 포함된 제안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북측 대표는 "왜 그러냐 하면 거기(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핵의 반입 문제도 없다. 반입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없다. 핵이 공중으로, 육지로, 바다로 우리 영내로 통과하는 것을 금지시킨다는 것도 없다"며 "외국 핵무기를 어떻게 처리한다는 그런 문제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의 조선반도(한반도) 비핵지대화하는 데 대해서 말하자면 국제적인 보장 문제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때 당시에는 북한도 한반도 비핵화를 먼저 강력하게 요구했었다. 1986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에서 "공화국 정부는 남조선에서 핵무기를 철수시키며 조선반도를 비핵지대·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측 대표는 "우리 영토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염두에 두고 얘기하는 것이고 또 대통령의 선언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으니까 갖지를 말자 하는 것"이라며 "핵무기 제조능력을 제거하자"고 제안했다.

공개된 남북회담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의 기조연설에 따르면 북측은 "아직도 평화가 깃들지 못하고 북과 남이 군사적으로 첨예한 대치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북쪽이든 남쪽이든 나라 안에 핵무기를 두고서는 우리 겨레가 하루도 편안하게 살 수 없다"며 "이러한 불안 요인을 모두 철저히 제거하자는 우리의 비핵지대화 제안은 천만번 정당한 것"이라며 비핵화에 찬성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문'으로 압박…'불가침선언'도 주한미군 철거 목적"

남북은 제5차 회담에서 논의가 끝나지 않은 핵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1991년 12월 26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판문점에서 회의를 이어갔고 마지막 날인 31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하지만 북측은 공동선언문을 근거로 미국 핵무기를 운반·탑재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잠수함 등 미국 핵 투발 수단의 한반도 전개를 봉쇄하려 했고, 모든 주한미군 기지와 원자력발전소를 사찰하겠다고 주장했다. 안보 공백을 우려한 노태우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또 제5차 회담에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 불가침' 조항에 남북 의견이 갈렸는데, 북측은 선 군비축소, 남측은 선 군사적 신뢰구축을 강조했다. 하지만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의 마지막 날인 1991년 12월 13일 최종적으로는 두 가지를 병립하는 방안으로 합의하며 채택됐다.

당시 북한이 '불가침 조항'을 채택한 배경에는 주한미군 철수를 염두한 것으로 유추된다. 사료집 회의록 편 4권 기록에 따르면 북측 대표는 "불가침 선언을 채택하게 되면 북과 남 사이에 군축하게 되고 군축하게 되면 미군이 남조선에서 어차피 철거해야 한다는 이런 당연한 논리가 뒤따르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