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메이커'에 화답한 '피스메이커'…북미 대화 '韓 패싱' 피했다
[한미정상회담] 트럼프 띄우며 한발 물러나…'운전자론' 대신 美 주도권 인정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트럼프 대통령께서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그를 '피스메이커'로 추켜세우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한반도 문제에서 정부가 운전대를 잡고 간다는 논리(한반도 운전자론)를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했을 때 한 발 더 뒤로 물러나 미국을 전면에 내세워 북한과의 대화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부각하면서다.
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 소인수회담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기본적으로 한미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의하며 일치된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지만, 당장은 미국이 더 앞선에 서서 한반도 대화 국면을 끌어가도록 한다는 구상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한국 지도자들이 취했던 접근법보다 이 대통령의 접근법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며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책에 힘을 실었다. 또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남북 간 핵전쟁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긴장 완화와 평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피스메이커' 구상에 후한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 정상 간 '빅딜'을 한국이 유도하고, 중대 기로에서 한국이 대표성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 간다는 문재인 정부 때의 '한반도 운전자론'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더 인정하겠다는 방향으로 조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적극 호응은, 이번 만남을 통해 한미 정상이 한반도 평화 전략과 관련해 공통된 인식과 방법론을 공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낫고, 그것보다는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 상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대북 정책 기조를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구상에도 직접 북한과 대화에 나설 여건이 되지 않으면 굳이 상황을 악화하지 않고, 미국을 나서게 해서 남북관계 정상화라는 목표를 얻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마라톤에서의 페이스메이커처럼 옆에서 '주연'을 도와주면서도 한국의 실질적인 이득을 챙기겠다는 '실용외교' 구상의 일환으로 보인다.
대북 관련 한미 정상의 화음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에 따라, 이재명 정부는 대북 정책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를 얻어내며 이른바 '한국 패싱' 우려를 당분간은 잠재우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최근 러시아와의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큰 성과를 얻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 대화 해결을 통한 새로운 '정치적 승리'에 대한 목표 의식을 심어준 것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초청했고,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의 만남도 추진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슬기로운 제안"이라며 "김정은을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이라고 호응해 당장 연내에 북미 대화의 새 분기점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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