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공들이는 '관광업'…남북 협력의 마중물 될 수 있을까[한반도 GPS]
北 관광 사업 활성화에 주력…'한반도 평화' 상징했던 관광 협력 전망은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최근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유독 공들이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관광업입니다. 그는 무려 10년 숙원사업이었던 해안 리조트인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를 지난달 완성하고, 이달 초부터 외국인 손님맞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집권 이후부터 줄곧 관광산업에 관심을 가져왔는데요.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고 북한이 모든 국경을 봉쇄하며 관광업 또한 5년간 전면 중단됐습니다. 그러다 작년부터 국경을 다시 점차 개방하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서는 평양국제마라톤과 국제영화제를 재개하는 등 본격적인 관광 재개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북한에서 관광사업은 여러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북한을 향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나날이 강력해지는 상황 속에서 관광업은 당국 간 협력사업이 아니라면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으면서도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수단 중 하나입니다.
또한, 주민들에게는 북한의 열악한 인프라를 개발해 휴식과 문화생활의 공간을 제공해 준다는 의미도 있는데 이는 김정은이 추구하는 '애민 지도자'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집니다.
그런데 관광에 대한 김정은의 '애정'이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이후 또 다른 의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관계에 황금기가 열린 데에는 무엇보다 금강산 관광의 역할이 컸기 때문입니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 분단 45년 만인 지난 1998년 처음 시작됐습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소 500마리를 몰고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른바 '소 떼 방북'에 북한의 호응은 컸습니다. 이후 남북은 현대그룹의 주도 아래 금강산 관광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는 남북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고 한반도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가장 큰 성과는 2000년에 열린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이었습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손을 잡고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에 뜻을 모았죠. 이후 2003년에는 개성공단이 건립돼 남북 간 경제 협력의 전성기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08년 한국인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한순간에 중단됐습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이 연이어 터지며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게 됐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전면에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재개되며 또 한 번 '별의 순간'이 오나 했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은 다시 긴 냉각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2019년 말, 김정은은 금강산을 찾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라"며 정부와 현대그룹이 금강산 일대에 지은 각종 호텔과 온천장 등을 철거하라고 지시했죠.
지난 2023년 연말 '남북 적대적 두 국가' 선언 이후로는 남한을 '한국'으로 부르며 고강도 단절 조치를 더욱 심화했습니다. 한때 한반도 평화를 상징하던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죠.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다시 한번 남북의 대화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남북관계 전성기를 이끈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이 대북 핵심 라인에 나서면서, 남북 간 교류가 예상보다 빨리 추진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옵니다.
물론 오늘날 한반도 상황은 17년 전과 많이 다릅니다. 아직 북한과의 공식적인 소통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관광 협력을 이야기하는 건 시기상조일 겁니다. 철거된 금강산 시설들을 개·보수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어려움이 요구될 테고, 무엇보다 북한이 한국에 문을 열지가 미지수입니다.
다만, 북한의 관광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한국 관광객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등 우호국은 물론이고 서방 국가들에까지 관광객 층위를 넓히고자 노력하지만, 사실 북한과 언어가 통하고 지리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한국인이 가장 주요 고객층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겁니다.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시간'이에요. 제가 1998년부터 2008년도까지 대북사업에 참여했는데, 처음에 북한은 우리와 협력을 하면서 '고맙다'거나 우호적인 표현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1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이 차츰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나중에는 한국 기업 관계자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는 것 같았어요."
금강산과 개성공단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남북 협력 사업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이 당장 한국에 호응할 것이라는 희망은 매우 희미하고, 남북이 예전처럼 협력할 미래는 더욱 아득하지만, 우리 정부가 정말 북한과 대화하고 교류할 의지가 있다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갖고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태도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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