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00℃] 고층 살림집 건설, 속도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북한 살림집 건설 속도에 대한 고찰
- 이설 기자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우리는 지난 1월1일 아침 려명거리의 70층 살림집(주택)에 올랐다."
북한이 지난 3일 공개한 새해 사진에 달린 설명이다. 새해 첫날 동해 바다나 높은 산에서 일출을 보는 우리와 달리, 첫 해를 보기 위해 수도의 고층 건물에 올랐다고 하니 어쩐지 생경하다. 북한에서 려명거리는 평양 내 가장 고층건물이 몰려 있는 곳으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치적으로 선전된다. 평양의 고층 건물에 올라 한 해 승리를 다짐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겠다.
실제로 김정은 총비서 집권 이후 평양에 고층 건물들을 집중 건설하며 짧은 기간 안에 '스카이라인'을 바꿔놨다. 2012년 20층·45층 높이 14개동으로 이뤄진 창전거리 완공을 시작으로 2013년 은하과학자거리와 44층·33층 높이 김일성종합대학 과학자 아파트, 2014년 위성과학자거리와 46층 높이 김책공업교육자 아파트 등이 지어졌다. 이어 2015년 53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있는 미래과학자거리와 2017년 55층·70층·82층 높이의 초고층 건물이 세워진 려명거리가 '고층'의 정점을 찍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처럼 짧은 기간 평양에 고층 건물을 지으면서 정권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민심을 얻고자 했다. 건설 현장 시찰에서 특히 '속도전'을 강조했던 이유일 것이다. 물론 김일성 주석 시기 천리마 속도부터 시작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희천 속도, 김정은 당 총비서의 마식령 속도, 평양 속도에 이르기까지 건설 속도는 3대에 걸쳐 강조돼왔다.
하지만 건물을 높이 올릴수록 '기초' 공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는 법이다. 평양에서 고층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던 2014년 5월, 23층 규모의 아파트가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다. 평양시 평천 구역에서 일어난 당시 사고는 북한이 매체를 통해 직접 알리고, 고위 간부가 직접 주민들에게 사과까지 한 이례적인 사고로 기억한다.
1992년 통일거리 26층 높이 아파트, 2013년 7월 평성구역 7층 높이 아파트 등 이전에도 평양 내 고층건물 붕괴 사고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이 직접 밝히진 않았다. 또 평천 아파트 붕괴 사고가 있던 해(2014년) 10월 평양시 낙랑구역 일대 38층 아파트도 일부 붕괴돼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명확하게 확인되진 않았다.
물론 북한이 평천 아파트 붕괴 당시 피해 규모나 사고 원인까지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다. 우리 언론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100여명에서 500여명까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비록 피해 규모는 '깜깜'이었지만, 무리한 공사 속도가 사고 원인이라는 지적엔 한 목소리가 나왔다. 짧은 기간 충당할 수 있는 건설자재는 부족한데 당에서 정한 공사 기한을 지키려고 하다가 부실공사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북한이 속도를 강조한다고 해서 모든 공사를 '빠르게' 끝냈던 것도 아니다. 북한은 작년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서 매년 1만 세대씩 총 5만 세대의 주택을 짓겠다고 했고, 김 총비서 참석 하에 3월 송신·송화지구에서 착공식을 했다. 이곳도 예외 없이 착공과 동시에 '평양 속도'가 강조됐지만 작년 말까지 완공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애초에 무리가 있는 계획이라면 굳이 속도를 강조하면서 건설자들을 압박해야 할까.
려명거리에 대한 선전 기사는 관영·선전매체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완성한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난다. 당시 북한은 김 총비서의 지시로 70층 아파트의 골조 공사를 74일 만에 끝내고 외벽 타일을 붙이는 작업을 단 13일 만에 끝냈다.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서도 속도전을 감행한 셈이다. 물론 빠르게 짓는다고 다 부실공사라 단정할 순 없지만 외신을 통해 불안함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전해지기도 했다.
높은 건물에 올라 새해 일출을 보는 풍경만큼이나 생경한 것은 새 살림집을 배정받고 눈물을 흘리거나 춤판을 벌이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다. 평천 아파트 붕괴 당시 간부들의 사과를 받으며 눈물을 찍어내던 주민들의 모습을, 체제 선전을 중시하는 북한은 더 이상 공개하진 않겠지만, 이는 기억될 역사다. 기초가 탄탄하지 않은 고층 건물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며 붕괴 사고는 많은 이들에게 악몽으로 남는다.
sseol@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