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평양 향기', 주민들 지갑 열까?
"Design으로 보는 북한 사회" 제19편 향기와 산업미술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10월엔 남북한 모두 굵직굵직한 디자인 전시들이 풍성하다.
이달 초 서울에선 대표적 디자인 행사인 '디자인 코리아(Design Korea) 2021'이 열렸고, 현재 DDP에서 디자인산업 양산을 위한 '2021 DDP 디자인 페어(Design Fair)'가 개최 중이다. 광주에서도 디자인비엔날레 전시가 이달 말까지 이어진다.
북한 디자인에서 가장 큰 연중행사인 국가산업미술전시회는 2012~19년엔 김일성 주석 생일(4월15일)이 있는 4월 '태양절'에 주로 개최됐다. 하지만 당 창건 제75주년인 2020년과 76주년인 올해는 창건일(10월10일)에 맞춰 10월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마도 올해 초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제기한 과업들의 성과를 내기엔 4월 전시는 좀 이른 감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10월6일 평양에서 개막한 국가산업미술전시회엔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김정은 당 총비서의 디자인 지도 행보가 적힌 패널이 걸려 있다. 패널 위쪽엔 "산업미술은 현 시기 우리 당이 중시하고 관심하는 분야입니다"는 김 총비서의 어록이 적혀 있고, 중앙엔 2013년 10월1일 승마복 견본을 보는 김 총비서의 '1호' 사진과 산업미술 지도 날짜가 기록돼 있다. 또한 패널에선 "우리 식, 우리 힘, 우리 손으로"라는 올해 산업미술전시회의 슬로건과 주요작들의 이미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국가산업미술중심 전시회장 1층엔 과거와 마찬가지로 최고지도자와 관련된 110여점의 도안들과 무궤도전차, 대형버스, 고속열차, 농기계, 도로청소차 등 기계공업 분야 주요 디자인들이 전시됐다. 2층엔 인민소비품과 관련된 경공업 분야 생필품 디자인들이 주로 배치됐다. 올해 전시엔 가정용 가구와 의상, 가죽 신발이 실현제품으로 전시돼 상품박람회 같은 분위기도 다소 풍긴다.
남북한의 디자인 전시회는 출품작 성격도 다르고, 무엇보다 전시 분위기에 차이가 난다. 북한 전시는 '국전'이기 때문에 출품작들의 배치 위계가 확실하다. 남한도 과거 '상공전' 때 유사한 특징을 보이긴 했지만, 최근 전시회들은 주제 선정이나 배치가 좀 더 자유로운 것 같다. 남북한의 체제가 다르고 경제 규모도 다르지만, 올해 남북한의 디자인 전시회를 보면 특이하게도 작은 공통점이 보인다.
남북한 디자인 전시회의 첫 번째 공통점은 전 세계의 화두인 '친환경'과 관련된 내용이 있단 점이고, 또 다른 공통점은 특이하게도 '향기 산업'과 관련된 제품을 디자인 전시회에 등장시켰단 것이다. 서울 동대문 DDP 디자인 전람회에서도 향초와 인센스 스틱(incense stick)을 즐기기 위한 디자인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북한에서도 평양향료공장의 향수, 향초, 식용향료 상품들이 산업미술전시회에 등장한 데다 언론을 통해 비중 있게 다뤄져 눈길을 끈다.
평양의 향기를 책임지는 평양향료공장은 대동강 남안 낙랑구역에 있으며, 작년 10월 준공됐다고 한다. 이 공장은 가동 이후 지금까지 20여종의 천연향을 개발하고 제품까지 생산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대표 상품이 올해 국가산업미술전시회에 출품된 것이다.
평양향료공장은 '식료·화장품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향료 개발을 하라'는 김 총비서 지시에 의해 건설된 경공업 생산기지다. 설립 목적대로 이 공장에선 천연 향기뿐만 아니라 맛을 내기 위한 식용향료, 세제류와 화장품에 들어가는 공업용 향료를 생산하고 있다. 이 공장은 연구-개발생산을 통합한 체계로 운영되는 특징이 있다. 공장 내부엔 향료연구소와 식용향료 생산장, 공업용향료 생산장, 공업용향료 중간시험장도 있으며, 디자인 관점에선 흥미롭게도 연구실에 도안실과 제품견본실을 갖추고 있다. 평양향료공장은 공장 고유 브랜드 '옥류'도 갖고 있고, 용기와 포장을 디자인할 전문 인력도 보유하고 있어 앞으로 도안창작 활동이 기대되는 생산조직이다.
평양향료공장에서 생산하는 '옥류' 향수는 유형도 다양해 몸 향수, 방안향수, 차향수를 비롯한 갖가지 제품을 만들고 있다. 북한은 이들 향수의 향은 20여종의 천연원료를 기본으로 만든다고 홍보한다. 공업용 향료제품으로 복숭아, 레몬, 박하, 딸기, 알로에향이 개발된 것으로 봤을 때 '룡악산' 같은 북한 세제류 브랜드의 샴푸, 린스, 목욕 겔(젤)이 천연향으로 질이 향상될 것으로 여겨진다.
향기 산업은 북한뿐만 아니라 코로나19에 따른 전 세계의 답답한 실내생활 문제를 해결해줄 소비재로 각광 받으며 성장 중인 분야다. 최근엔 사용자 취향을 고려한 스마트 디퓨저 디자인 개발도 한창이어서 과학기술적으로도 발전하고 있다. '향기'는 뷰티 상품의 마케팅, 힐링을 위한 아로마테라피 용도 외에도 예술적 영감을 주는 소재로 많이 사용된다.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으로 한국과 전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도 열등한 계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주인공이 풍기는 지하실 냄새를 영화에 등장시킨 게 인상적이었다.
향기엔 분명 메시지가 있다. 북한과 향기. 이제까지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고, 북한의 향료산업 부각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좋은 변화의 메시지이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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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 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